'자기개발시기' 무색
조퇴·결석은 흔한 일
"교사도 무력감 느껴"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교육활동을 펼친다'는 지적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3 교실에서 학생이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자도, 수업 시간 중 가방을 들고나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영화 보기에 지치고, 보드 게임에 흥미를 잃었다. 고3 학생들은 "이렇게 학교에서 시간을 허비할 것 같으면 겨울방학을 앞당겼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진주 한 고교 3학년 학생들은 수능 이후 4교시까지 단축 수업을 하고 낮 12시 40분 하교한다. 오전 수업 중 영화 보기가 지겨우면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도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보고 떠드는 등 각자 하고 싶은 행동을 한다. ㄱ 학생은 "대학 정시 모집을 앞두고 예체능 분야 실기를 준비하고 있다. 차라리 방학을 빨리해서 학원에서 실기 연습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 한 고교 3학년 교실도 귀가하는 12시 40분까지 영화 감상과 자유 시간이 이어진다. ㄴ 학생은 "집에 종일 있는 것보다 친구들을 만나 노는 건 좋지만, 학교에서 그냥 시간 보내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하는 강연과 체험 활동은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김해 한 고교에 다니는 ㄷ 학생은 "우리 스스로 폐인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수업 분위기를 전했다. 교과목 교사는 매 교시 들어와 출석체크만 하고 나가거나, 수업 종료 5분 전에 들어와 출석 체크를 한다. ㄷ 학생은 "교실 뒤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는 애들도 있고, 오전 8시 30분 조회시간 담임 '눈도장'만 찍고 학교 밖으로 나가거나 아예 학교에 오지 않는 애들이 절반이다"고 말했다.

수능 이후 고3 교실 학사운영 파행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경남도교육청은 이 시기를 '자기개발시기(취약 시기)'로 규정해 모든 고교에 '수능 이후 고3 교육과정 운영계획'을 작성·보고할 것을 주문했다.

ㄱ·ㄴ·ㄷ 학생이 다니는 학교 운영계획을 보면 12월 말 겨울방학 전까지 나름대로 진로 강의·체험학습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교과담당 교사가 정상 수업을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계획과 현실 괴리는 크다.

한 교사는 "법정 수업 일수와 과목별 필수 이수 단위를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려 하지만, 다수 학생이 진학할 대학을 선택한 상태에서 수업과 출석·결석에 더는 관심이 없다.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교사도 무력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ㄷ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학기 초부터 교사가 당부해 남겨둔 현장체험학습기간 10일을 활용해 겨울방학이 2주 당겨진다. 도내 대부분 고교 겨울방학은 12월 21~28일 사이 시작된다.

ㄷ 학생은 "고3 겨울방학은 12년간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기다. 학교에 오는 학생들끼리라도 사회에 나갔을 때 더 고민될 진로, 행복, 직업, 사랑, 연애 등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