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했던 나라 일으킨 원동력은 성평등 정책
1975년 10월 24일 여성총파업
직장일·가사 거부하고 거리로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등 결실
2020년 성별 임금격차 '0'목표
기업·기관 인증 의무화 추진

북대서양 섬나라인 아이슬란드. 지난달 22일 도착한 아이슬란드는 우중충한 초겨울 날씨였다. 대한민국 국토 면적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33만 명(양산시와 비슷) 정도인 작은 나라다. 아이슬란드가 '오로라' 관광만큼이나 유명한 이유는 '세계 성 격차지수 1위 국가'라는 명성 때문이다. 지난 2009년부터 9년 연속이다.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정부·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춥고 척박한 나라가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성평등 정책을 주저없이 꼽았다. 이런 명성에 걸맞게 아이슬란드는 올해부터 세계 최초로 '동일노동 동일임금법'을 시행하고 있다.

▲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아이슬란드 '동일노동 동일임금'법 심벌. 동일임금 인증을 받은 회사를 표시할 수 있는 상징이다. /아이슬란드 복지부

◇2022년 남녀임금 격차 '0' 목표 =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성별이나 인종·국적과 관계없이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같은 임금을 준다는 원칙이다. 이 법안은 2008년 상정돼 10년 동안 임금 지급 기준안을 정하고 수정해 지난해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에 의원의 절반가량이 '여성'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법이 시행되면서 25명 이상을 고용하는 아이슬란드 기업과 정부기관은 동일임금 원칙과 관련해 정부 인증을 획득해야 한다. 인증을 못 받으면 벌금이 부과되며 3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시행 첫해인 올해는 직원 250명 이상 기업·기관이 대상이며, 2019년 150명, 2020년 90명, 2021년 25명 이상 등 연차별로 대상을 확대해 2022년까지 성별 임금격차를 완전 철폐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 공동취재단이 지난달 23일아이슬란드 복지부 취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사회복지평등부 수석고문은 "그동안 남녀가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며 입법을 진행해 왔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임금 격차가 존재했다"면서 "이번 법안은 여자와 남자가 똑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100년의 성평등 역사, 여성총파업으로 = 아이슬란드 성평등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수석고문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은 1911년 시작됐다"며 "1939년 여성권리협회가 동등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1954년 공직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부문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동등한 보수를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1975년 10월 24일 있었던 '여성 총파업(Women's Day Off)'은 아이슬란드의 역사를 바꾼 날로 기록되고 있다. 이날 여성들은 직장일과 가사노동을 전면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40%가 넘는 성별 임금격차와 불공정한 고용 관행에 분노한 여성들은 평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 아이슬란드 여성의 90%가 참여한 1975년 10월 24일 '여성총파업' 모습. /아이슬란드 복지부

총파업은 여성들이 경제와 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일깨우는 분수령이 됐다. 이듬해인 1976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의회를 통과했고, 1980년에는 유럽 최초로 여성 대통령(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이 탄생했다.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이었다. 비그디스는 1996년까지 16년 동안 대통령 자리를 지켰고, 성평등 정책이 자리 잡았다.

1975년 당시 아이슬란드 여성 90% 이상이 참여한 여성총파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여성 직장인들은 이날 오후 2시 38분에 퇴근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동일임금을 적용한다면 여성은 오후 2시 38분 이후로는 무임금 노동이어서 이를 거부한다는 메시지다.

▲ 공동취재단과 인터뷰 중인 아이슬란드 복지부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수석고문. /공동취재단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 수석고문은 "과거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아이와 고령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로 집에서 돈을 받지 않는 가사노동을 해 왔다. 경력이 단절되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성별 임금 차이가 나게 되고, 그것이 연금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했기 때문에 성차별적인 임금제도 개선으로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재 아이슬란드 여성 83%, 남성 91%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성별 임금격차는 2016년 기준 아이슬란드는 9.9%이다. 한국은 36.7%로 OECD 국가 평균 14.1%의 두 배를 웃돌았다. 한국에서 남성이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63만여 원을 받는 셈이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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