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세상의 모든 엄니를 위해

내 어머니는 일곱 해 전에 소천했다. 65세에 병들어 8년 동안 침상에 누워 있다가 73세에 먼 길 갔으니 황망하기 그지없는 노년이었다. 안타까워하며 위로하는 주변 친지들의 말은 다 똑같았다.

"쌔빠지게 고생허다 쫌 살만허이 아파가꼬 자식들하고 놀러댕기도 몬허고…." 그러고는 "우짜든지 자식들 고생 안 하거로 잘 죽어야 할건데"로 마무리했다. 나는 내 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 생애사를 미처 채록해놓지 못했다. 어머니의 작은 수첩에 삐뚤삐뚤 써놓은 전화번호나 쪽지들에 얽힌 사연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오래된 사진첩 속의 결혼사진, 새댁시절 사진 등에 얽힌 어머니 이야기에 무심했다. 늦은 후회는 두고두고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지난 4월 '할매열전'을 기획하고 5월 말에 연재를 시작했다. 2주에 한 번 연재를 하는 동안 내 어머니 같은 14명의 어머니를 만났다.

다들 처음에는 쑥스러운 듯 이야기할 게 없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내 '내 살아온 것만 해도 책이 열두 권'이라는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대부분 1930년대, 1940년대생… 내 어머니처럼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또는 일제강점기 해방을 맞거나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학교 교육을 받기는커녕 '살림 밑천'이어야 했던 이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며 평생 생존을 위해 살다보니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는 여성 노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인생사를 신문에서 접한 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할매열전' 주인공이었던 어머니의 딸들에게 물었다.

첫째, 보도 후 어머니에 대해 어찌 생각하게 됐는지, 둘째,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게 있었는지, 셋째, 앞으로 우리 세대는 노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까? 등을 물었다. 다가올 노년을 걱정하며 '미래의 할매'를 준비하는 세 명의 딸들이 보내온 답변으로 '할매열전' 총16회를 끝맺음한다.

▲ 한정희(38·캘리그래피 강사) 씨
2018년 10월 1일 보도 진주 망경동 김덕남 엄니 셋째딸

어머니 잘 알게돼 기뻐 노인 소외 현상 없기를

① 어머니가 그동안 어떻게 우리를 키우고 살아오셨는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어머니는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들을 자식들에겐 하지 않고, 자식들 좋은 것만 입히고 먹이려고 앞만 보고 살아왔구나 싶다. 이제야 깨닫게 되는 마음이다. 평소 어머니께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쓰려면 책 10권도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부터 살아온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잠깐잠깐 단편적인 이야기만 들었던 것 같다.

신문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 제법 많았다. 아버지와 10살 차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혼인신고 하러 갔다가 하지 못하고 돌아온 건 처음 알았다. 당시 18살에 시집갔던 어머니는 늦은 출생신고로 인해 호적 나이가 15살이었고 너무 어린 나이라 신고도 못하고 돌아오셨다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있었는데도 그런 사실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자식으로서 참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고 서글픈 이야기였다. 어린나이에 시집을 가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 많은 식구들 밥을 지어서 먹였다는 이야기도 나에겐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다. 더욱이 얼마 전에 출산한 나에게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이야기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입덧은 심하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어린 나이에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했어야 했던 그 시절이 같은 여자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세세한 내용까지 기사에 나온 덕분에 어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침부터 밤까지 식당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늘 어머니께 이야기한다. 일은 줄이고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지내라고.

노년, 먼 얘기인 듯하지만 아이들 키우며 살다보면 준비도 없이 다가올 것 같다. 노년에 대한 걱정은 첫 번째는 건강이다. 자식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자식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해야 할지를 먼저 알고 그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곧 나의 노년이라 생각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30년 뒤 내가 노인이 됐을 때는 지금 청년들처럼 자기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노인이라해서 소외되지 않고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한마디. 어머니, 우리 사남매에게 최고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남은 생애를 응원합니다."

▲ 이봉석(57·전통염색연구가) 씨
2018년 10월 15일 보도 하동군 북천 차임순 엄니 큰딸

가족 위해 자신 삶 희생노인복지 더 확충됐으면

② 지난 10월 15일 신문에 보도된 인터뷰 글을 읽으며 어머니 살아온 세월에 형제들 모두 잠시 숙연해졌다. 어머니가 한국전쟁으로 초등학교 졸업장을 못 받은 사연을 처음 들었다. 단순히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하지 못한 줄 알았다. 쓰고 읽기에 능하고 늘 사리분별이 깊은 분이라 생각지 못했다. 어머니 인생에서 자신의 삶은 없고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신 것 같아 애처롭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늘 어머니의 삶은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작고 여리게 보이지만 늘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자식들을 바르게 길러주셨다.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너무 긴 세월 자신으로 살지 못한 것 같다. 인터뷰 글을 읽고 나서 형제들 모두 내 어머니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내 어머니가 자랑스럽다.

우리 사회는 현재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앞으로 우리 세대의 노년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50대 후반에 접어들며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을 왕성하게 하고 있지만 솔직히 나이 들어갈수록 두렵고 걱정된다. 안정적인 노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활동과 자립이 필요하다. 그러기위해서는 노인복지가 지금보다 더 확충되고 정착돼야 한다고 본다. 정부에서도 노인복지를 점차 개선 확대하고 있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복지정책 10가지'도 이에 속한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노인복지에 대한 인식이 이제 싹트고 있다. 앞으로 국가적으로 노인복지에 대한 고민과 적절한 예산 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어머니의 노년을 지켜보면 그래도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예전에 조카들의 빚을 떠안고 어떻게 어렵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는데다가 아버지 월급이 어머니 손에 들어오지 못한 시절도 얘기를 들었던 적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더 이상 속앓이 하지 않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어 고맙다.

우리는 가족끼리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렇게 시간별로 정리를 해놓을 수는 없었다. 근데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한눈에 정리해서 되짚을 수 있었다. 나는 집안 사정을 비교적 다 아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인터뷰 기사를 보고 한국전쟁 때 배우고 불렀다는 노래는 처음 알았다. 동생은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60주년 결혼기념일에 뭔가를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좋은 기회였다. 형제들이 고마워했다.

▲ 박낭주(53·극단현장 사무국) 씨
2018년 11월 2일 보도 진주 주약동 김덕업 엄니 외동딸

지난날 되돌아본 계기기본생활권 보장 강화를

③ 지금 노년 세대들은 병들어 일상생활이 되지 못할 경우 머리로는 요양원에 가서 지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속마음은 자식들이 돌봐줬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요양원에 가는 것을 '버려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부모를 내가 책임진다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책임진다는 인식과 분위기가 아직 따라주지 않는다.

나의 노후 준비는 좀 특별하다. 돈도 아니고, 나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내 현실에 맞게 산다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노후에 한 달에 얼마 쓸 수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건강하다면 노년을 미리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으로 노후 보장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노인이 일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지 못했다. 카페나 마트에서 머리가 허옇고 허리가 구부정한 사람이 하는 걸 상상조차 못한다. 한국 사회는 이런 서비스 분야에서 모두 다 젊은 사람으로 채우려고 한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만 하면 노인들도 이런 서비스 일자리가 가능하다고 본다. 젊은 사람만 선호하는 분위기는 점차 인구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바뀔 것 같다. 국가가 인간으로서의 기본생활권을 보장해준다면 삶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지만 작은 일자리라도 가질 수 있게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보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끝> /글·사진 시민기자 권영란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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