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지만 잘 몰랐던 지역사 배움터
백성보호·왜구통제 위해 쌓은 웅천읍성
복원된 전통성곽 기능 등 생생하게 체험
진해·마산 옛 도심에선 '근현대사 답사'

'창원에서 역사 문화 탐방을 한다고?' 창원은 공업도시 신도시 이미지가 세다. 창원에서 역사 문화 탐방을 하겠다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올해는 세 학교가 창원을 골랐다. 창원 진해냉천중(6월 30일), 양산 효암고(9월 8일)와 창원중앙고(10월 13일)다.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첫 인상과 달리 함께 둘러볼 만한 역사와 문화가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창원 학교의 창원 탐방은 탁월한 선택이다. 옛 창원·진해·마산이 2010년 통합되었으나 10년이 되어 가는 지금도 서로 겉돌기 때문이다. 마산은 창원과 진해를, 진해는 마산과 창원을, 창원은 진해와 마산을 서로 다른 지역이라 여기는 것이다. 친해지고 하나가 되려면 일단 좀더 잘 알아야 하겠고 역사 문화 탐방은 상대 지역에 관심을 키워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웅천읍성을 쌓을 때 동원된 백성들의 이름과 출신 지역이 적혀 있는 바위 앞에서 창원중앙고 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시작은 진해 웅천읍성에서

웅천읍성은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1419년)과 관련되어 있다. 고려 말기부터 극성을 부리던 왜구를 제압하고 남해 바다를 안정시키려고 대마도를 정벌했다. 안정에는 정복뿐 아니라 교역도 필요했다. 상대 요구를 받아들여 웅천 앞 제포에 왜관을 열었다(1426년). 염포(울산)·부산포(동래)와 함께 세 곳을 열어 삼포개항이라 한다. 웅천읍성은 백성 보호와 왜인 통제를 위하여 그 다음 1434년에 쌓았다.

웅천읍성은 동쪽 성벽이 주로 남아 있다. 많은 부분 복원이 되어 있어 옛 모습을 살피는 데 지장이 없다. 아무렇게나 쌓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대로 쌓았기에 전통 성곽의 모습과 기능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먼저 방어를 위하여 둘레에 통째로 해자(垓字)를 깊이 파고 물이 흐르게 했다. 물 속에는 뾰족한 나무꼬챙이를 촘촘하게 꽂아 섣불리 뛰어들면 다치게 만들었다. 조교(弔橋)도 두어 적이 쳐들어오면 부산 영도다리처럼 상판을 들어올릴 수 있도록 했다.

성문을 두고는 바깥쪽으로 둥글게 한 번 더 쌓아올린 옹성(擁城)이 있다. 한자 그대로 포옹하고 있는 성이다. 이러면 문을 좀더 잘 지킬 수 있고 또 위에 올라 아래를 향해 좀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남쪽과 북쪽 끝자락 꺾어지는 지점에는 바깥으로 튀어나온 성벽이 있다. 치성(雉城)인데 길게 뻗은 모습이 꿩(雉)의 꼬리 같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또한 외적의 공격에 제대로 맞서기 위한 장치다.

학생들이 제일 재미있어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당시 동원된 백성들의 이름과 출신 지역이 적힌 바위가 두 군데 있다. 말하자면 건축실명제다. 요즘은 어떤 공무원이 무슨 공사를 했는지 적는다. 담당 공무원의 책임 범위를 밝히는 셈이다. 하지만 민국이 아닌 옛날 왕국은 달랐다. 어느 지역에서 온 어떤 백성이 어디까지 성벽을 쌓았는지 적었다. 나중에 허물어지면 다시 쌓는 책임을 백성들한테 지우기 위해서였다.

▲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가 있는 남원로터리에서 미션 문제 풀이를 하고 있다.

◇근대 역사가 모여 있는 진해 옛 시가지

여기서는 설명이 아닌 미션 수행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노레일카를 타고 제황산 꼭대기 진해박물관을 찾는다. 2층에서 일제강점기 진해 역사를 알아본 다음 8층 전망대에서 전경을 통째 담는다. 뒤이어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 그리고 1970년대까지 현대사에 두루 걸치는 유물을 찾아나서는 미션이 주어진다. 365계단을 내려와 간단한 설명을 듣고는 곧바로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흩어진다. 주어진 시간 안에 중원로터리 일대에서 해당 유물을 사진에 담아 남원로터리로 오면 된다.

미션지에는 진해우체국, 10월유신기념탑, 문화공간 흑백, 중국집 元海樓(원해루)와 그 앞에 달려 있는 榮海樓(영해루) 나무 간판, 새수양회관 3층 뾰족건물 등이 적혀 있다. 일제가 해군기지를 만들 때부터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쳐 10월유신까지 우리 역사와 당시 사정이 스며 있다. 마지막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400년 세월을 뛰어넘어 나라 사랑 마음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만난 친필시비 사진 찍기다.

친필시비는 남원로터리에 있다. 여기를 집결지로 삼은 까닭이다. 다 모이면 해당 유물 또는 유적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고 그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아보는 문제 풀이를 다함께 진행한다. 그런 다음 많이 맞힌 팀에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나누어준다.

◇마산 창동·오동동에 남은 현대사

점심을 먹고 가는 창동·오동동에서도 미션수행을 한다. 조선시대 조세창고가 있던 조창터, 일제강점기 경남 최초 조선인 주식회사 원동무역터, 독립운동가·민주화운동가들도 갇혔던 마산형무소터, 5000년 역사에서 일반 국민이 지배집단을 이긴 최초의 사건 3·15의거 발원지, 위안부소녀상, 90년대까지 마산의 랜드마크였던 옛 시민극장,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 등이다.

일대는 옛 도심을 되살리는 작업이 벌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데를 학생들이 돌아다니면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도시 골목과 거리에도 역사가 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러면서 우리 일상 하나하나도 나중에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역사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재미가 먼저다. 스스로 찾아다니는 자체가 신나고 같이 사진찍고 놀며 군것질도 할 수 있으니 즐겁다.

이쯤에서 진해냉천중·창원중앙고 역사 문화 탐방은 상품권 선물과 함께 마무리가 되었다. 대부분은 우리 창원에 이렇게 근·현대 역사 유물·유적이 많이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부터 살피고 알아보아야겠다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다.

▲ 진동 고인돌 유적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양산 효암고 학생들과 선생님.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도

가깝지 않은 양산에서 오다 보니 효암고 친구들은 오전에 웅천읍성에 가지 못했다. 대신 오후에 진동 고인돌 유적에 들렀다. 청동기시대 무덤들이 조그만 돌곽에서 커다란 덮개돌까지 한눈에 담긴다. 시신을 안치하고 수북하게 덮은 위에 다시 납작하고 편평한 돌을 전체에 깔아놓은 다음 덮개돌을 올린 고인돌이 가장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다른 어떤 데서도 볼 수 없는 모양이다. 다음은 공룡발자국화석이 찍힌 고인돌이다. 옛사람들은 그냥 바닷가에서 바위를 떼어왔을 뿐이지만 그게 지금 사람들 눈에는 신기하다.

학생들은 산책로를 따라 거닐며 주변 풍경에 눈을 던진다. 뒤로 햇살이 기우는 가운데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는다. 바다로 곧장 이어지는 하천 바로 옆에 펼쳐진 널따란 개활지라 시원하게 툭 트인 느낌을 준다. 양산 친구들에게는 이 또한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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