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의 수렁 속으로 밀어넣는 대입제도
성과중심의 고정관념 부모세대가 깨야

고3 학부모로서의 날들이 거의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다.

언론은 연일 불수능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혹여 그것이 좁은길을 통과할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이기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 부모가 이러니 당사자인 고3 학생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러나 대입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는 많은데 정작 속시원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내 아이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나라의 미래도 없게 하는 것은 아닌지 무서운 성찰을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대학은 대입장사에 열중이고 제도를 바꾸어야 할 이들은 어떡하면 대학에 붙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두고 있고 대단한 학원들은 벌써 재수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깊은 성적의 늪에다 가두어 두고 있다. 지금 아이들의 부모세대, 즉 학력고사 세대들은 잠깐 한눈팔아도 회복할 기회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자녀들은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또 무슨 짓들인가. 내 아이만은 잘되어야 하고 잘되도록 족집게 학원을 찾는 사이 아이들의 꿈은 하염없이 무너지고 있다.

불수능에 낙담하고 피기도 전에 경쟁에서 밀려나게 내버려 두어서는 부모로서 죄짓는 것이며 기성인으로서 미래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신 위주로 가야 하느니 수능을 늘려야 하느니 논쟁은 어느 쪽이든 학생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다. 내신은 삼 년 내도록 아이들을 한눈팔지 못하게 하고 수능은 단 하루에 모든 것이 결정나는 데 어느 것이 덜하다고 하고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이다. 우리 사회는 죄지은 자도 가기 싫어하는 지옥을 한 점 티 없는 아이들에게 열어 놓고 부질없는 타령만 하고 있다.

대입제도를 이대로 두어서는 아이의 미래를 망치고 국가의 존속을 불가능하게 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최선을 찾아내야 한다. 공교육 유지를 명분으로 하는 내신평가는 숙명여고 사태에서 보듯 국민적 불신을 해결할 방안이 없는 한 실패한 제도이다. 아이들을 한눈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 교사의 교권에 어떤 긍정적인 요소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드러났다.

가라는 고교와 나라는 고교의 시험 수준이 다른데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대입의 중요 근거로 삼는 것은 학생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교육의 위세가 등등한 수능이 옳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단 한 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것이다.

대입 지옥을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는 부모세대들이 자기들이 살아온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한다. 그렇다고 그만큼 국가사회가 우수하지는 않다.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인 서울, 명문대를 나와야 대접받는 대기업 또는 공기업에 취직할 꿈이라도 꾸는 현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부모세대들의 성과주의적 고정관념이다.

학생은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 본인의 소질과 꿈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 중 이런 기본상식으로 자녀를 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자문해 본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또는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학원문을 두드리는 대신 자녀와 무릎을 맞대고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면 학원은 스스로 문을 닫을 것이고 학교는 성적 생지옥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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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라는 제도를 잘 이용하고 그릇이 되는 정치인을 뽑으면 사회문제의 제도적 혁신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 정부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아직은 아닌 듯하다. 고3 학부모 노릇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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