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지역감독이 관객 만나는 창구
열악한 재정 환경에도 10년 이상 이어져
경남 '자산'성장시킬 지원·전문가 간절

경남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정리해 보려고 취재를 하다가 놀랐습니다. 첫 번째로 10년 이상 꾸준히 열리고 있는 영화제들 상황이 실제로 너무 열악했고요. 두 번째, 지역 영화계 내외부 이해관계가 뜻밖에 복잡하고 셈법이 워낙 다양해서 골치가 다 아프더군요.

그러면서 영화제를 포함해 현재 지역 영화계가 어떤 정체기에 빠져 있고,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어떤 식으로든 '교통정리'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6년 9월 9일 경남발전연구원 1층 세미나실에서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영상 포럼'이란 게 열렸었습니다. 이 자리가 사실은 지역 영화계 정체기를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 같은 거였는데요. 민관의 협력이 중요하다, 지역 대표 영화제를 육성해야 한다는 등 결론이 났지만 그 이후로 나아진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지역 영화제만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영화제 왜 필요한가 = 먼저 지역 영화 발전을 위해 영화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영화를 시작하면서 바로 대규모 상업 영화를 찍는 감독은 거의 없을 겁니다. 보통은 단편영화부터 시작하죠. 요즘으로 치면 독립영화일 텐데요. 경남문예진흥원에서도 지역 감독들에게 제작 지원을 많이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일도 힘이 듭니다만, 더욱 중요한 건 상영이라 하겠습니다. 결국은 관객에게 보여줘야 영화인 거죠. 그런데 독립영화는 상영관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대부분인 우리나라 극장 생태계에서 돈 안 되는 독립영화가 들어갈 곳은 거의 없습니다. 독립영화 전용관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이런 의미에서 영화제야말로 독립영화가 마음껏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됩니다. 다양성과 독창성을 가치로 내세우기 때문에 관객들이 생각지도 못한 좋은 영화를 만날 가능성도 큰 거죠.

지난해 독립영화인으로 12년 만에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이 된 조영각 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앞서 언급한 2016년 영상 포럼에서 한 이야기로 정리를 해보죠.

"특히나 독립영화라는 다소 제한적인 작품을 가지고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과 만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영화제가 필요하다. 영화제라는 축제의 공간에서 새롭고 낯선 작품을 보고 창작자를 만나는 것은 일반 시민들에겐 색다른 경험이며 그들의 문화 역량을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훌륭한 영화감독이나 창작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듯 이런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규모의 영화제들에서 단초가 확보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영화제가 있나 = 이렇게 보면 지역에 영화제가 많을수록 영화인들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현재 경남에서 열리는 영화제 중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은 3개 정도입니다.

▲ 지난 9~10일 창원에서 열린 제12회 창원환경영화제. /창원환경영화제

먼저 지난 2~4일 진주에서 열린 제11회 진주같은영화제가 있고요. 9~10일 창원에서 열린 제12회 창원환경영화제, 그리고 올해 열리면 제12회가 되는 경남독립영화제가 있습니다. 환경분야를 특화해 MBC경남이 진행하는 창원환경영화제를 빼면 경남을 대표할만한 영화제로 진주같은영화제와 경남독립영화제를 들 수 있겠죠. 진주 같은 영화제는 진주시민미디어센터에서, 경남독립영화제는 경남영화협회에서 하는 겁니다. 둘 다 10년 이상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예산이 적어 매년 힘들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주 같은 영화제는 지난해와 올해 돈이 조금 더 들어가긴 했지만, 매년 500만~700만 원 수준에서 운영됩니다. 경남독립영화제는 더 열악해서 매년 600만 원 정도를 쓰는데, 창원시에서 400만 원 지원을 받고 나면 나머지 200만 원은 스스로 마련해야 합니다. 두 영화제 다 인건비와 홍보 등은 제외한 예산입니다. 돈을 벌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돈을 더 쓰면서 영화제를 하는 거죠. 그럼에도, 10년 이상 이어온 것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요.

하지만, 해가 갈수록 힘이 들어 규모가 줄어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역 영화제 중에서 경남도 지원을 받은 곳은 없습니다. 경남도로서는 특정 단체만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처음에 이야기한 지역 영화계 복잡한 이해관계와 셈법 탓이라고 하겠습니다.

◇경남 영화제 발전을 위해 = 이런 맥락에서 16~18일 창원에서 처음 열린 시네마디지털경남2018은 여러모로 독특합니다. 경남문예진흥원과 시네마디지털운영위원회가 직접 진행한 건데요, 예산이 3500만원 정도로 다른 영화제와 비교해 월등하게 많습니다. 운영위에는 지역 주요 영화인들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진주같은영화제, 경남독립영화제를 진행하는 사람들까지요.

▲ 지난 16~18일 창원에서 처음 열린 시네마디지털경남2018. /이서후 기자

하지만, 진흥원에서 직접 새로 영화제를 만든 것을 두고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내 영화인 중에는 차라리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해온 영화제에 힘을 실어 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진흥원에서도 이런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영화제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합니다. 위탁 기관이 재위탁을 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기왕 확보한 예산이 있으니 지역 영화제 판을 키우자는 뜻으로 시네마디지털경남이라는 영화제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결국 진흥원도 장기적으로는 이 영화제를 민간에 맡길 생각이긴 합니다.

사실 3500만 원도 영화제 예산으로 많은 건 아닙니다. 100억 원이 훨씬 넘는 부산국제영화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3억~4억 원은 돼야 제대로 된 영화제 하나를 진행할 수 있다고 영화인들은 봅니다.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경남 영화 산업을 지원하는 주체인 진흥원의 역할도 사실 좀 애매합니다. 독립영화제작 지원, 찾아가는 영화 상영회, 로케이션 촬영지원 같은 걸 하고 있지만 영화 산업 기반을 전반적으로 담당하기에는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진흥원 자체가 순환보직으로 운영되기에 전문인력을 운용하기가 어렵고요. 현재 영화를 전공한 직원이 있긴 하지만, 이미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 벅차기도 합니다.

지역 영화인들도 내부적으로 소통과 협력을 통해 네트워크가 됐든 사단법인이 됐든 단일 단체를 하나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경남도로서도 한결 지원하기가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면 현재 진흥원이 하는 사업의 상당부분을 직접 해낼 수도 있겠고요.

그러고 나서야 제법 규모도 있고, 기존 영화제 노하우를 발판으로 프로그램도 더 알찬 영화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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