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민속품 가득한 호기심 천국
관장이 발품 팔아 모은 5000점
보유 수준·물량 전국 으뜸 평가
관람객 맞춤형 해설도 인기 만점
옛 가구 이름·모양·쓰임새 공부
잘 몰랐던 선조의 지혜도 깨달아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는 그동안 표충사와 밀양향교·예림서원, 독립운동기념관과 영남루, 작원관지·삼랑진역과 삼랑창터 일대를 여덟 차례에 걸쳐 둘러보았다. 이들은 밀양이 예로부터 갖추어 온 넉넉한 물산과 그에 바탕삼은 풍요로운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알려주고 있다.

하남 수산의 동명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한 아홉 번째(11월 8일)와 열 번째(14일) 활동은 조금 색다르게 작원(鵲院) 일대 유적과 미리벌민속박물관을 선택했다. 작원 일대야 이미 전통 시대 교통 요충지로서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을 당시 조선 군대가 최초로 저항다운 저항을 벌인 자리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군사 300명으로 1만 8700명에 이르는 왜군의 진격을 하루 넘게 막아내었던 것이다.

▲ 성재정 관장이 함지박을 들어올리자 학생들이 이를 보고 있다.

◇밀양의 숨은 보석

미리벌민속박물관은 여러 민속품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성재정(75) 관장이 1970년대부터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모은 5000점 남짓이다. 옛 범평초교 자리에 1998년 들어섰으니 올해 20년째다. 충분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보유 민속품의 수준과 물량이 모두 우리나라 으뜸이다. 2015년 8~9월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미리벌민속박물관과 함께 '목가구, 삶을 담다'를 주제로 기획특별전을 공동으로 열었을 정도다. 밀양의 역사와 문화만을 콕 집어 알려주는 공간은 아니지만 이제 밀양의 문화를 이루는 한 요소가 되었다.

사실 어린 친구들에게 민속품은 굉장히 낯설다. 은행에 저축을 하지 누가 돈궤를 방 안에 둘까. 쌀 또한 필요할 때 조금씩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지 누가 커다란 뒤주에 가득 담아둘까. 밥상도 그냥 먹고 싶을 때 대충 차리면 그만이지 누가 소반에다 식구마다 독상을 차릴까. 이런 아이들에게 미리벌민속박물관은 호기심 천국이 되곤 한다.

그러나 그냥 보기만 해서는 실감이 새삼스레 다가오지 않는다. 눈높이를 맞추어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성재정 관장이 바로 그런 분이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상대방 맞춤형 해설로 민속품의 세계를 보여주는 재주를 갖췄다. 이번에도 그랬다. 학생들을 사랑방·안방과 부엌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나치게 자세하지도 않았고 대놓고 듬성듬성하지도 않았다.

▲ 성재정 관장이 사랑방에서 공부할 때 쓰는 경상(經床)의 빼닫이 서랍을 열어보이고 있다.

◇사랑방은 '닫이'

사랑방은 남자들의 공간이다. 걸맞게 가구들 또한 꾸밈이 없으며 크고 또 묵직하다. 먼저 '반닫이'가 있다. 정면의 위쪽 절반이 닫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앞으로 닫히기 때문에 '앞닫이'라고도 한다. 문서와 족보·가보 같은 귀중품, 글씨를 쓰는 한지와 집안 아이들에게 주는 군것질거리를 주로 넣어두었다. 그보다 커다란 '윗닫이'는 옆에 있다. 위로 들어서 여닫았기 때문에 '들닫이', 그래서 닫을 때 툭 놓으면 벼락처럼 큰 소리가 난다 해서 '벼락닫이'라는 이름도 있다.

왜 이렇게 크게 소리나도록 했을까. 안에 넣어두었던 물건과 관련이 있다. 농사를 크게 짓는 집의 사랑방에만 있었는데 엽전 따위 돈꾸러미를 넣어두는, 요즘으로 치면 금고와 같은 돈궤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몰래 들어와 훔쳐가면서 실수로 손잡이를 놓치기라도 하면 집안에 크게 울리도록 그렇게 했다는 얘기다. 돈궤가 경보를 울리는 기능까지 겸한 셈이다.

성 관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밀고 닫는다고 미닫이, 빼고 닫는다고 빼닫이, 열고 닫는다고 여닫이, 내려서 닫는다고 내리닫이 등등. 옛사람들은 이렇게 우리 말을 살려서 가구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요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일본말로 오해·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일러준다.

▲ 바느질에 쓰는 도구들을 살펴보는 모습.

◇안방은 '장'과 '농'

안방은 여자들 차지였다. 가구들도 나름 치장이 되어 있으며 작고 가볍고 날렵하다. 장과 농은 구분된다. 이층장은 1층과 2층이 한데 붙어 있어 뗄 수 없는 일체형이고 이층롱은 1층과 2층을 필요에 따라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옷가지나 반짇고리, 장식품, 화장품 따위를 넣어두었던 용도는 다르지 않았다.

몸체에 문짝을 붙여두는 경첩은 모양마다 담긴 뜻이 다르다. 나비 모양은 사랑을 의미한다. 두 마리면 어린 애기씨가, 세 마리면 혼례를 올린 여인네가 주인이다. 또 실패 모양은 거기 감겨 있는 실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무병장수의 기원이 들어 있고 논밭처럼 기다란 네모꼴이면 재산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동그라미도 있는데 이는 모양 그대로 보름달을 뜻한다고 한다.

평상은 사랑방과 안방 모두에 있다. 격식을 갖춘 평상인데 사랑방은 앞쪽이 트인 반면 안방은 사방이 둘러쳐져 있다. 사방에 구름 모양으로 구멍을 내놓았는데 여자는 낮은 데 있고 남자는 높은 데 있다. 남자를 상징하는 신선은 구름 속에서 놀고 여자를 상징하는 선녀는 구름 위에서 놀기 때문이란다.

◇부엌은 '소반'

부엌은 단연 밥상이다. 요즘은 부모자식이 한데 먹는 겸상이지만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옛날 양반집은 독상이 기본이어서 대부분 조그마했다. 그런 까닭에 소반(小盤)이다. 같은 소반이라도 상다리가 개 뒷다리처럼 생긴 개다리소반은 머슴이나 하인처럼 손아랫사람 차지였고 늘씬하고 곧게 뻗는 다리는 집주인과 신분이 같거나 높은 사람 차지였다는 것이다. 여럿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교자상도 있지만 이는 바깥손님을 치를 때만 썼다.

쌀 한 가마가 통째로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은 뒤주도 여럿 있다. 모두 짧으나마 다리가 달려 있었는데 쌀을 오래 보관하려면 아래로 바람이 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떡시루도 있는데 하나는 쌀이 두어 말은 한꺼번에 들어갈 만큼 컸고 다른 하나는 서너 되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것이었다. 큰 시루에서는 50~60명 대가족 잘사는 집안의 넉넉함이 보이고 작은 시루에서는 명절에도 떡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가난한 집구석의 노심초사가 보였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색깔 재료와 대나무로 필통을 만드는 체험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소감 발표를 했다. 대부분이 첫걸음이었는데 밀양에 이런 데가 있는 줄 처음 알았고 옛날 조상들 쓰던 물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몇몇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친구들이었는데 전에는 그냥 둘러보기만 해서 제대로 알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쉬운 설명 덕분에 좀더 깊이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끝>

△후원 : 밀양시청

△기획·주관 : 밀양교육지원청·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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