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가부장제…지역성평등지수 4년째 중하위권
연극계부터 학교까지 '미투'폭로 쏟아진 경남
여성 정치세력화 부족한 데다 경제활동참가율 49.7%로 저조
"성 주류화 정책 추진하려면 여성정책기관 설립 시급"

지난 19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앞. 검은 옷과 마스크를 낀 20여 명의 여성이 검은 손팻말을 들고 모였다. 이들이 내건 펼침막에는 '미성년자 길들이기 성범죄! 법원은 상식과 성인지적 관점에서 판결하라'고 씌어 있었다.

김해지역 극단 번작이 조증윤(50) 대표의 청소년 성폭행 혐의 항소심을 앞두고 재판부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지역여성계의 시위였다. 이들은 조 대표에 대한 1심 선고 형량(징역 5년과 성폭력프로그램 80시간 이수, 5년간 정보공개,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 제한 등)이 낮다며, '그루밍 성폭력(Grooming·가해자에 의한 성적 길들이기)'에 대한 재판부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역여성단체들로 구성된 #미투경남운동본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0일)을 맞아 26일 오전 다시 창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 이들은 법·예산·체계가 바뀔 때까지 #미투는 멈추지 않는다고 선언할 예정이다.

◇미투, 경남을 깨우다 = 올해 1월 당시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서 근무하던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불거진 미투운동은 경남에도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2월에 조 대표의 미성년자 단원 성폭행 피해 폭로가 잇따랐다. 같은 달 연극연출가 이윤택과 인간문화재 하부용의 상습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에서 20년간 유지돼온 밀양연극촌이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극계뿐 아니라 '스쿨미투'가 이어졌고, 성추행 혐의로 경찰 간부들이 수사를 받았다.

미투운동은 한국사회에서 남성이라는 성 권력(젠더권력)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 드러냈다. 이러한 젠더권력의 이면에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일어나는 각종 성 불평등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경남지역은 성 불평등이 더 심각하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2011년부터 해마다 발표하는 '지역성평등지수'에서 경남은 2013년 이후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중하위권 경남, 오를 수 있을까 = 여가부는 전국 16개 시·도별 성평등 수준을 파악해 성평등 정책과제와 방향을 점검하고자 매년 12월 말 지역성평등지수를 측정해 발표한다. 성평등 수준은 상·중상·중하·하 4단계로 분류한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6년 지역성평등지수는 75.6점(완전평등상태 100점)으로 전년보다 2.1점 올랐다. 전국적으로 2011년 측정 이래 매년 상승세가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남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11~2012년 하위권에서, 2013년 중하위권으로 한 단계 오르더니 4년째 머물러 있다.

지표는 8개 분야로 나뉜다. 경남은 경제활동(66.6위)과 의사결정(24.0) 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16개 시·도 중 각각 15위와 13위에 머물렀고, 교육·직업훈련(93.4)은 9위였다. 복지(84.1)와 보건(96.3) 분야도 각각 13위와 15위에 그쳤다. 안전(78.1·5위), 가족(79.7·4위), 문화·정보(89.9·6위) 분야는 상위권에 포함됐다.

◇경남 여성 사회참여 늘려야 = 경남이 지역성평등지수에서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경제활동과 의사결정 분야 영향이 크다.

경제활동참가율과 성별임금격차·상용직노동자 성비 불평등이 전국 평균을 한참 밑돈다.

경남지역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49.7%(2016년 기준)로 남성(74.6%)보다 25%p 낮은 데다 42%가 임시직이나 일용직 등이다.

또한 광역·기초의원이나 5급 이상 공무원 비율·관리자·위원회 위원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 참여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6·13지방선거 결과만 보더라도 경남 광역의회 여성의원 비율은 13.8%(전국평균 19.4%), 기초의회는 25.8%(전국평균 30.8%)에 불과했다. 기초자치단체장은 한 명도 없다.

▲ 경남여성계가 19일 창원지법 정문 앞에서 21일 열린 김해 극단 번작이 조증윤 대표의 항소심을 앞두고 재판부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이경옥 경남여성단체연합 부설 여성정책센터장은 "지역성평등지수가 전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가부장성이 강한 경남의 의식과 문화, 성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경남도정의 모든 정책, 모든 부서에 성인지적 관점으로 성주류화 정책을 추진하려면 여성정책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경남지역 거주 여성 삶이 어떤지, 여성 노동권은 얼마나 열악한지, 지역 성차별은 어떤지에 대한 자료와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수립하는 성 평등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여성정책기관은 '성평등 경남'으로 가는 데 여성 요구를 반영한 정책연구와 개발, 민간연구원을 활용한 성주류화 정책 추진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지역여성계의 요구에 따라 경남도는 2020년까지 경남여성정책연구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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