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품 탄생 배경엔 후원자 있어
정부 지원보다 민간 후원 역할 커져야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오, 단테 등은 15~17세기 유럽의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예술작품과 지식을 남긴 이들에게는 '메디치 가문'이라는 후원자가 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에 자리한 메디치 가문은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에게 숙식은 물론이고 창조활동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갈릴레오의 '천문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의 위대한 창조물이 탄생하였다.

메디치 가문에 모인 예술, 문학, 인문, 과학 등 여러 작가는 각자 전문 분야를 허물고 서로의 재능을 융합해 큰 시너지 효과를 내었고, 이는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분야의 요소들이 결합해서 더 큰 에너지를 분출할 때를 '메디치 효과'라 부르기도 한다. 350년에 걸쳐 막대한 재산을 쏟아부은 메디치 가문은 예술 창조와 지식 창출을 위해 공헌한 존경받는 가문이 되었고 예술과 학문을 후원한 대표적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100년에 걸쳐 짓고 있는 스페인의 대표 건축물,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현대사의 위대한 건축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라 할 정도로, 그의 건축물 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가우디가 오늘날 위대한 건축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천재적 재능도 있었겠지만,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과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섬유·은행·시멘트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구엘은 1878년 처음 가우디를 만난 뒤 생을 마감한 1918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가우디의 적극적인 후원자이자 친구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엘이 가우디에게 맡긴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카타라스 별장 등은 모두 가우디를 위대한 건축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작품이 되었다. 가우디에 대한 구엘의 절대적인 믿음과 지원이 건축계의 거장 가우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걸작의 탄생에는 인간의 창조력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경제력이 필요하다. 창작가와 그 가족의 생계는 물론이거니와 창작활동에 동반되는 각종 재료, 장비, 경비 등이 지원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후원이 보편화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과학기술의 연구개발 활동에도 정부나 기업이 그 후원을 자청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간 약 70조 원을 연구개발에 지원하고 있고, OECD 국가 중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돈이다. 70조 원 중에서 정부가 24%, 민간이 76%를 각각 부담하고 있으며, 연구원 1인당 연간 연구개발비는 2억 원에 육박한다. 다만, 오늘날의 후원은 대부분 계약에 의한 유의미한 성과를 요구하는 '용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정부와 기업이 연구원을 직접 고용(연구기관 설립 등)하여 각종 연구개발 등의 창조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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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이든 용역이든, 창조활동에 대한 지원은 끊임없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국민 세금의 한도 내에서 한정적으로 지원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메디치 가문이나 구엘과 같은 민간(기업)이 상대적으로 큰 후원 역할을 해야 한다. 글로벌 선진기업들에서 보듯 미래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첨단기술을 만들어내고 산업발전을 끌어내고 있다. 정부보다 기업주도의 혁신이 산업발전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2의 메디치 가문, 구엘이 얼마만큼 존재하는가가 한 국가의 창조력을 결정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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