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건 아니다' 말하는 그 아이가 본 사회
시대적 배경, 정치적 격변기 이란
흑백 애니로 몰입감·표현력 극대
각종 영화제서 호평…재개봉작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연출 뱅상 파로노드·마르얀 사트라피, 프랑스)가 10년 만에 재개봉했다.

영화는 2008년 개봉 당시 엠파이어 매거진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등 영화제 28개 부문 수상, 55개 부문에 이름이 올라 극찬을 받았다.

마르얀 사트라피 감독의 자전적 영화라는 <페르세폴리스>,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 흑백이 주를 이루는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스틸컷

◇"실사로 영화를 제작했다면 먼 나라의 얘기" = 영화의 배경은 이란이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남서부 팔스지방에 있는 아케메네스왕조의 수도다.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도시'를 의미한다.

주인공 마르잔(목소리 키아라 마스트로얀니)은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이소룡을 동경하는 아이다. 영화는 1978년부터 16년간 마르잔이 소녀가 되고 성인이 되는 성장 과정을 이란에 휘몰아친 정치적 격변으로 담아냈다.

마르얀 사트라피는 이를 위해 영화보다 앞서 제작한 그래픽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작품)에 움직임을 넣었다. 실사 영화가 아니라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그녀는 "실사로 영화를 제작했다면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아무리 잘해도 그것은 이국적인 이야기였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엔 제3세계의 어떤 일로 치부했을 것이다"고 밝혔다.

◇자유와 용기 = "국왕 타도, 국왕 타도"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르잔의 아빠(목소리 시몬 압카리언)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기뻐한다. 마르잔은 '잘' 모르지만 할머니(목소리 다니엘 다리유)와 엄마(목소리 까트린 드뇌브)의 대화 속에 끼어 자유라는 희망을 어렴풋이 그려본다.

하지만 팔레비왕조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중심에 내세운 이슬람공화국을 설립하고, 이를 반대했던 시민들은 무고한 목숨을 잃는다. 마르잔의 친인척도 예외가 아니다. 마르잔이 좋아하는 아노쉬 삼촌(목소리 프랑소와 제로스미)은 다시 감옥에 갇힌다.

아노쉬는 마르잔에게 민주주의와 평등을 말하며 독재에서 이란을 구하라고 말한다. 그러곤 가족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테헤란의 분위기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체포와 사형이 다반사고 정부는 강력한 법을 내세운다. 학교에서도 여자는 자신을 감싸야 하며 노출은 죄악이라고 가르친다. 마트에는 살 먹을거리가 없고 남자는 거리낌 없이 여자에게 반말을 내뱉는다. 이 와중에 이라크와 전쟁이 일어난다.

▲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스틸컷

하지만 마르잔은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고 펑크는 살아있다고 말하는, 다른 도시의 소녀와 같다. 차도르를 벗어 던지고 헤드뱅을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 유일한 탈출구는 파티라며 집에서 몰래 술을 만들어 사람들과 어울린다. 마르잔은 자립적이고 진취적인 가족에서 학교와 국가가 가르치는 것들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소녀로 성장한다.

그럼에도 테헤란에는 자유가 없다. 부모님은 마르잔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보낸다.

마르잔은 유럽에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들의 허무주의가 불편하다. 서양문화를 공부해보지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는 "삶은 가치 있는 거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있어. 여긴 안전하지만 무의미해"라고 말한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마르잔.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한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할머니는 말한다. 그깟 이혼 때문에 그러냐며.

테헤란의 생활은 가족이 있어 외롭지 않지만 자유가 없다. 여자에게 정조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이란에서 마르잔은 버틸 자신이 없다. 그녀는 다시 프랑스 파리로 떠날 결심을 한다.

▲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스틸컷

영화 배경이 파리로 바뀌면 영화는 색을 입는다. 공항에서 담배를 피우며 회상에 빠진 마르잔, 테헤란행 일정을 보다 다시 담배를 꺼내 문다.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아빠, 늘 정직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살고 싶지만 유럽에서 이란인은 아주 낯선 이방인이다. 마르잔은 과연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마르잔, 우리와 같아" = 영화 <페르세폴리스>로 이란 혁명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혁명 후 이란은 더 강압적인 사회로 바뀐다. 서구의 문물은 나쁘며 여성은 가정만을 지켜야 한다.

이란 출신 작가 마르얌 포야가 지은 <이란의 여성, 노동자,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와 저항>에 따르면 1979년 혁명운동에 여성들도 대거 참여했다. 그러나 국가는 사회 전체에 가부장적 구조를 강화했다. 여성은 남성에 종속하는 관계가 됐다.

1979년 4월 국민투표로 이란은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공화국이 됐고 새로운 지배자들은 이슬람식 성의 관계를 강화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운다. 성직자들은 공식적으로 여성 격리 이데올로기를 설교한다. 여성은 고용이라는 공공 영역에서 완전히 물러나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결혼은 여성에게 합당한 신분을 부여하는 중요한 관례였다. 이러한 이슬람 문화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변화는 조금씩 일고 있다.

▲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스틸컷

지난해 이란의 여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공개적으로 여성의 권익을 주장했고 지난 6월에는 이란 여성들도 37년 만에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혹시 그들이 낯설고 두려운가? 잘 모르기에 배제하는 것은 아닐까? 마르잔을 만나자. 우리처럼 정체성을 고민하는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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