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숲 찾아온 밀화부리·쇠딱따구리
환경정화 명분으로 자연훼손 없어야

늦가을 어느 날 학교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앙증맞게 예쁜데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작으면서도 갖출 것은 다 갖추어 아주 깜찍합니다. 화려한 자태는 아니지만 제법 귀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학교에 찾아온 손님들은 대부분 장학사님이거나 운영위원님 그리고 학부모님들이었습니다. 꽤 먼 옛날엔 높은 분들 오시면 먼지 털고 유리창 닦는 대청소 하느라 위험천만한 상태로 창문틀에 매달리기도 했었습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신 손님은 높은 곳에서 오긴 했는데 하늘에서 날아왔습니다. 밀화부리란 새입니다. 밀화부리는 겨울이 다가올 때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귀한 겨울철새입니다. 주로 나무에 매달린 씨앗을 즐겨 먹습니다. 팽나무나 튤립나무에 앉아 요리조리 고개 내밀어 먹이가 되는 씨앗을 찾습니다. 팽나무는 어린 시절 '포구나무'로 불렀던 그 나뭅니다. 작은 총알처럼 보이는 열매가 나무 가득 달립니다. 튤립나무는 꽃이 튤립 닮아 백합나무라 부르기도 하는데, 꽃이 지고 잎이 떨어져 내린 가을 무렵 백합 꽃 닮은 열매가 나무 전체에 매달립니다. 두 나무 모두 겨울 철새들의 훌륭한 먹이가 되는 참 고마운 나무입니다.

학교 숲에 찾아온 손님들은 밀화부리뿐만이 아닙니다. 쇠딱따구리는 부지런히 나무를 쪼아대며 꽁꽁 숨어있는 벌레 행방을 찾아냅니다. 동박새는 동백꽃 핀 나무를 귀신같이 알아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지난봄에는 학교 화단에 있는 은청가문비나무에 멧비둘기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엉성한 둥지였지만 아이들의 보살핌 속에 무사히 새끼를 키워냈습니다.

다양한 손님들이 학교에 찾아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학교 주변에 작지만 예쁜 숲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연못이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학교가 동네 뒷산 숲정이와 붙어있거나 옆으로 도랑이나 하천이 지나가는 경우는 무려 30~40종 정도나 되는 조류들을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화단에 있는 나무가 다양할수록 찾아오는 손님들도 다양해집니다.

그런데 가을이 지나갈 무렵이 되면 학교마다 나무 가지치기가 시작됩니다. 햇빛을 가려 그늘 만드는 나무, 키가 커져서 태풍에 쓰러질 위험이 있는 나무는 우선 제거 대상이 됩니다. 정원수로 심은 나무들은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긴 합니다만 문제는 무차별적으로 나무를 자르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개교를 기념하면서 심은 수십 년 된 매화나무가 단지 지저분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송두리째 잘려나가기도 합니다. 가장 미움받는 나무 중 하나는 은행나무입니다. 열매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하고 가을에 은행잎이 많이 떨어진다는 이유입니다. 다른 나무들도 수난당하기는 마찬가지 신세입니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 이 시기는 그야말로 나무들의 수난시대입니다. 나무를 잘라버리면 더 이상 새들이 찾아오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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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알고 온전히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일. 어디쯤에서 다가오는지도 모르는 4차 산업혁명 이해하는 것보다 몇십 배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교육은 풀 한 포기, 나무 하나를 온전히 아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잎사귀와 꽃 그리고 열매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 나무를 찾아오는 곤충과 새들, 땅속 균류까지 함께 알아가는 과정이 곧 교육일지도 모릅니다.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가 작은 우주라는 사실도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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