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반갑고 고마웠던 인연
국내 20대 동호인들 현지 재회…함께 삼겹살·라면 먹고 긴 수다
폭우 속 만난 한국인 유학생도…차 한 잔 건네며 따듯한 맘 나눠
세르비아·코소보·알바니아 통과…아픈 전쟁의 역사적 현장 체험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도착해 오토바이를 점검하고 엔진오일도 교환했다. 소피아에는 '성 게오르기 교회'가 있다.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4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교회로, 터키 지배 시절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다. 전체적으로 도시에는 공원과 녹지대가 많아 푸르렀다. 또 높은 빌딩이 거의 없어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소피아를 천천히 관광한 뒤 오토바이 앞 브레이크 패드가 다 소모되어 정비소를 찾아다녔다. 몇 군데를 들러 다행히 규격과 맞는 부품을 발견했다. 오랜 여행의 흔적이 오토바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큰 고장 없이 여기까지 와준 오토바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불가리아를 지나 세르비아로 통하는 국경을 향해 출발했다. 세르비아는 과거 동유럽의 최강자 유고슬라비아연합이 있을 때 중심 국가 아니던가.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될 당시 세르비아의 코소보지역에는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다. 그들이 독립을 요구했지만 세르비아는 들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코소보 사태가 발생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결국 세르비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코소보를 분리시켜줬던 지난 역사가 있다.

지금도 세르비아 대 알바니아-코소보 간의 관계는 좋지 않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우리 여행 경로가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체첸사태, 코소보사태 등 전쟁의 중심지였던 곳들과 겹쳐졌다. 아픈 전쟁의 역사적 현장을 지나며 그들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었다. 아들 지훈이에게는 학교보다 나은 공부가 되었을 것 같다. 우리는 이탈리아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알바니아로 향했다. 코소보를 지나 알바니아로 가는 국경검문소는 한 곳으로 통합이 돼 있었다. 코소보와 알바니아는 역시나 서로 친한 것 같았다.

◇지훈이를 위해 비상식량을 내놓은 동생들

우리는 알바니아의 대표적 항구도시인 두러스에 들러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 우리보다 한 달 정도 먼저 한국을 출발해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하는 동생들이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이륜차타고세계여행'(이타세)이라는 모임을 통해 함께 만나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직 20대 꿈 많은 청년들인 그들은 우리처럼 중앙아시아를 거쳐 온 게 아니고, 러시아를 지나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을 거쳐 여기로 내려왔다고 한다.

▲ 알바니아에서 만난 상학이, 진현이랑 함께.

두러스 바닷가에 도착하니 먼저 온 상학이와 진현이가 길게 펼쳐진 해수욕장 앞에 있는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바니아가 크게 유명관광지가 아니라서 동양인조차 만나기 힘든 곳인데 이런 곳에서 한국인 동생들을 만나다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곳의 바닷가 백사장은 아주 길고 컸다. 다함께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나니 동생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가게로 가서 돼지 삼겹살을 사왔다. 중앙아시아에서 터키까지는 이슬람국가라서 돼지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고추장에 찍어 먹는 삼겹살은 정말 맛있었다. 우리는 서로 여행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3개월 만에 한국말을 제일 많이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동생들이 비상식량인 한국 라면과 짜장라면을 아들 지훈이를 위해 풀었다. 계속 여행해야 하는 여행자들인데 아낌없이 내어놓는 동생들이 고마웠다. 이틀간의 휴식을 즐긴 후 아쉽지만 다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 알바니아 두러스 해수욕장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 두러스 해변에서 아기랑 놀아주는 지훈이.
우리는 알바니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바리'로 가는 페리를 타기로 했다. 상학이와 진현이는 우리가 지나온 터키로 간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라 터키 여행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한국에서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여행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길….

◇이탈리아에서 만난 영국 유학생

알바니아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페리는 10층 규모로 아주 컸다. 출발시간이 되기 2시간 전인데도 미리 자동차들이 줄지어 승선하고 있었다. 우리도 차례를 기다려 배에 바이크를 실었다. 룸을 따로 구하지 않고 의자로 이뤄진 객실을 예약했는데 생각보다 객실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 넓은 바닥에 침낭을 펴고 편하게 이탈리아로 향했다. 밤 11시에 출발한 배는 아침 8시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 도착해 가장 먼저 느낀 건 비싼 물가였다. 기름값도 비싸고, 밥값도 지금까지의 두 배였다.

바리를 출발해 소렌토로 향하는 길에 달력에서나 볼 법한 아주 멋진 지중해 바다 마을을 만났다. '아말피'라는 마을에는 절벽에 지어진 집들이 많았다. 이탈리아에 도착하고부터 날씨는 좋지 않았고 계속 비가 내렸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어느 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로 변했다. 나중에 현지뉴스를 보고 안 사실이지만 이 폭우로 이탈리아 사람 여러 명이 실종됐다고 한다.

▲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

해안가 길은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이어지는 커브길이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승용차 한 대가 추월하지도 않고 우리 뒤를 졸졸 따라 왔다. 우리가 천천히 달려서 그런가? 생각이 들어 먼저 보내주려고 오토바이를 한쪽 옆에 잠시 세웠더니 뒤에 차도 같이 서며 차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한국인 혜미 씨와 스위스 출신의 마이클이라는 청년이 타고 있었다. 둘은 친구사이인데 승용차 안에도 친구 2명이 더 있었다. 호기심 많은 마이클이 우리 오토바이 뒤에 달린 태극기가 너무 반가워서 쫓아왔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토바이 여행을 오다니 무척 궁금했다고 한다.

그들은 완전히 비에 젖은 우리를 근처 호텔의 카페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와 코코아를 사주었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아 지훈이와 오들오들 떨고 있었는데,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의 여행경로가 이탈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간다고 하니 마이클은 스위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 꼭 들렀다 가라며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스위스 물가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들었는데 지낼 곳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미 씨와 마이클 덕분에 폭우가 쏟아지는 길에서 잠시지만 몸을 녹인 후 다시 길을 나섰다. 다행히 출발할 때쯤엔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유럽이지만 대개 여행사를 통해서 오기 때문에 유명관광지를 중심으로 짧게 짧게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우리는 정해둔 곳 없이 가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쉬고, 다음날 또 여행지를 정하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 신기한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의 좋은 만남이 스위스에서도 계속 이어질까. 흥미진진한 여행은 계속된다.

/글·사진 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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