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인데 새롭기 그지없소 이것을 더했기 때문이오
과거의 단순 재현이 아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복고
또다른 가치·메시지 부여해 개성·정체성 표현 도구로

레트로(retro)를 넘어 뉴트로(new-tro)다.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 열풍은 강약만 있을 뿐 오래전부터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의 경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용자만의 색깔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다. 대중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복고 유행은 가라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타샤 튜더>(연출 마쓰타니 미쓰에, 일본).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였던 타샤 튜더(Tasha Tudor·1915~ 2008)는 1830~40년대 골동품으로 살았다. 그 시절의 미국이 좋아 택했던 생활방식이었다.

이는 단지 사용하는 물건이 좋아서 택한 삶이 아니다. 자연에 영향을 덜 주고 자급자족하는 아미시(Amish) 생활방식을 고수한 그녀의 가치관이 반영됐다. 그녀의 일상은 자신이 펴낸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샤 튜더는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들로 살아도 인생은 짧다고 말한다.

레트로가 취향을 넘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 창원 마산합포구 음악다방 '황실다방'. 1960년대 모습을 다시 살려 22일 문을 연다.

각종 SNS(Social Network Services)에는 '#레트로' 관련 게시물이 넘쳐난다. 오래전에 사용했던 커다란 상표가 박힌 물건을 팔고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절 문화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나고 있다.

각종 TV 프로그램은 이를 잘 활용해 인기를 끌고 연예인들은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자신을 홍보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오래전 어르신들이 즐겨 찾던 서울 동묘시장은 '힙스터의 성지'로 불린다.

또 최근 눈에 띄는 게시물이 '#로라코스타'다. 에버랜드가 내달 2일까지 벌이는 축제 '월간 로라코스타'를 태그한 것. 에버랜드는 10~20대를 겨냥해 1960~70년대 감성을 강조한 축제를 열고 놀이기구 간판을 촌스럽게 꾸며놓아 이용자들이 여러 미션을 수행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그 시절이 그리워 레트로를 고집하는 40~50대가 아니라 과거의 문화를 오히려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져 뉴트로로 확장하고 있다.

이렇듯 기업들은 옛 유행을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는 뉴트로를 내세우며 발 빠른 마케팅을 펼친다.

◇레트로와 지역 문화가 만나면

지역에서도 레트로를 특화한 공간이 선을 보이고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니다. 옛 물건이 좋아 하나둘 모아둔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펼쳐놓은 지역민들이다.

창원 마산합포구 부림시장 한 골목 2층에 있는 황실다방. 1967년에 장사를 시작했다던 다방이 오는 22일 새롭게 손님을 맞는다. 김상래(47) 씨가 레트로 음악 다방으로 문을 연다.

"지난해 말 젊은이들이 황실다방을 새롭게 꾸몄다고 들었다. 오래된 사진, 자개장 등을 놓고 1960년대 황실다방을 재현했다. 얼마 전 황실다방이 새 주인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선소 희망퇴직 이후 제2의 인생을 황실다방에서 시작한다."

▲ 창원 창동예술촌에 내달 문을 열 고물창고. 복고 소품을 모아놓은 쇼룸이다.

김 씨는 LP 음악을 좋아해 마산 헌책방으로 귀한 앨범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다 황실다방의 소식을 알게 됐고 자신이 먼 미래에 하고 싶다고 막연히 품어왔던 꿈을 실현하기로 했다. 김 씨는 개업을 위해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손님들에게 내놓을 LP판과 카세트테이프를 선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비엔나커피, 쌍화차를 마시며 레트로 음악을 들고 싶다면 찾길 바란다. 역사성 있는 황실다방이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황실다방은 휴일 없이 문을 열 예정이다. 문의 010-3878-7112.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영록서점 건물 3~4층. 한 젊은이가 쉴 새 없이 계단을 오르며 오래된 책장을 손질하고 있다.

강왕국(30) 씨가 이르면 내달 '고물창고'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 레트로 쇼룸을 만들고 있다.

그는 창동예술촌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7~8년 전부터 하나둘 모은 레트로 소품이 창고를 빌려 보관할 만큼 엄청나다.

"남들이 버린 물건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재밌다. 1970~80년대 물건을 많이 모았는데, 아주 유행이 되어 식상해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근대, 일제강점기 소품을 구하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쓰레기를 주우러' 다닌다. 큰돈을 들여 사오는 게 아니라 쓸모가 없어 버려지는 물건 더미에서 보물을 찾아낸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행위의 의미를 찾고 있다.

"우연히 경성의과대학에 다녔던 한 남자의 노트와 물건을 만났다. 인체해부도부터 만년필, 그가 쓴 편지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절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또 해방 기념 태극기도 구했다. 단순히 레트로라는 콘셉트로 물건을 진열하는 게 아니라 레트로가 가진 역사와 이야기,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강 씨는 최근 문화계 전반에 걸친 레트로 열풍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자신이 지역에서 펼쳐놓을 공간이 그저 잠시 '힙'한 곳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길 바란다.

창동예술촌에서 활동하는 한 예술가는 "골목 곳곳에 묻어 있는 그 시절 향수와 한 청년이 펼쳐놓을 새로운 공간이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지 기대된다"고 했다.

문의 055-247-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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