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된 유물서 뛰어난 돌 가공기술 발견
진주청동기박물관,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1990년대 말, 남강댐 확장공사로 대평을 중심으로 한 남강유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유구가 대량으로 발굴되자 국내는 물론 일본의 고고학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당시 남강을 중심으로 한 경남지역의 문화가 일본 야요이 문화의 기원지라는 사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지금의 시대 분류상으로 보면 청동기시대에 속하지만 실제로 생활에 쓰인 도구는 청동기가 아니라 석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간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학기술은 무엇이었을까? 또, 이 기술들은 오늘날과는 얼마나 다를까?

먼저, 당시 대평인들은 '암석학' 지식이 매우 풍부했던 것 같다. 그것은 발굴된 유물의 석재가 매우 다양했고, 무엇보다 석기의 용도에 맞게 석재를 잘 선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평리 옥방1지구 유물을 살펴보면, 사암에서부터 규암에 이르기까지 16종의 암석으로 20종 이상의 석기를 만들었다. 특히, 지리산 일대에서 당시 최고의 신소재였던 천하석과 벽옥 등 옥 재료를 찾아낸 안목은 정말 독보적이다.

더 나아가 높은 수준의 석재 가공기술도 돋보인다. 대평리에서 출토된 돌도끼나 홈자귀를 비롯한 석기는 크기가 고르고, 칼날(刃) 또한 예리하게 잘 서 있다. 옥기나 반월형 돌칼에는 구멍까지 뚫려있다. 이런 사실들로 보아 당시의 핵심적인 돌 가공기술은 '자르기(찰절)-갈기(연마)-구멍 뚫기(천공)'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자르기 기술인 찰절 기법은 제작할 도구의 용도에 맞추어 석재를 선택하고, 여기에 예리한 날을 가진 찰절기로 원하는 곳을 마치 톱질하듯이 계속 문질러서 절단시키는 기술이다. 이것은 오늘날 전동 그라인더(grinder)로 석재를 자르는 방법과 별반 다름이 없다. 이 찰절 기법은 석기의 정형화를 혁신적으로 가져왔다.

두 번째, 이곳 공방의 연마기술도 뛰어났다. 대평에서 출토된 석기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숫돌이다. 대평리 어은2지구에서는 집집이 회백색 해옥사(解玉沙)가 출토되었다. 요즘도 화산재로 된 응회암 계통의 회백색 연마사가 연마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들의 연마기술이 얼마나 전문화되어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세 번째, 천공(穿孔)기술이다. 대평리 지석묘에서는 최장 12㎝에 달하는 초대형 벽옥제 관옥 5개가 출토되었다. 이렇게 단단하고 긴 벽옥의 중심에 구멍을 뚫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지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옥을 가공하려면 석영제 드릴 날이 필요하다. 실제로 대평리와 그 인근에서 다량의 옥가공용 석영제 드릴 날이 출토되었다. 또, 여러 공방 터에서 관성바퀴(flywheel)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원반형 석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활비비(Bow drill)나 펌프드릴(Pump drill)과 같은 천공기술이 일상화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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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남강 유역에는 암석학의 전문지식과 마찰과 회전관성과 같은 물리적 원리를 응용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장인들이 살았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단지 그 기술들의 효율성만 향상되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경남지역 제조업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선사시대 대평의 과학기술문화'를 복원하자. 그리고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을 선사시대 기술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하자. 수천 년 전, 일본 야요이문화의 원조였던 경남지역의 자랑스러운 장인정신을 체험해 봄으로써 제조업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해 주고, 그 가치를 인식시키자. 더 나아가 21세기의 마에스트로로 키워나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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