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위도를 넘어 단풍이 거리로 내려왔다. 하늘로 두 팔 벌린 나무들 사이로 물든 나뭇잎들이 길 위에 입 맞춘다. 변함없이 계속되어온 철의 변화. 기억에 관해 생각한다. 잊힌다는 것에 관해 생각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는 동안 익숙해져 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산다는 것이 힘들어 애써 외면해야 했던 것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한다. 역사적 사명이나 책무보다 개인의 사생활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인생은 역사나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너무 짧다.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자신이라는 정체성은 한편으로 공동체에 관한 무관심으로도 이어진다.

'2018년 마산가고파국화축제'에서 민주화 운동을 만났다. 저마다 노랗게 핀 국화꽃 앞에서 사람들은 기억의 한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 사이 부마민주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3·15의거(1960.3.15)를 시작으로 4·19혁명(1960.4.19), 부마민주항쟁(1970.10.18), 6월항쟁(1987.6.10)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민주화 운동은 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신기하게도 창원시 SNS를 통해 민주화 유적지 본격탐방 1편이 스마트폰을 울린다. "마산 지역에만 무려 14곳의 민주화 유적지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3·15의거'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첫 신호탄이다. 희생자인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전 국민의 분노가 확산되어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마산 오동동에 마산민주당부가 자리 잡고 있었던 '3·15의거 발원지'는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당원들이 시내로 뛰쳐나감으로써 3·15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다. 3월 15일 밤, 시위대가 무학초등학교 앞 도로에 진입하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실탄 공격을 가했던 흔적을 복원해 놓은 '무학초등학교 총격담장',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곳에서 총격으로 12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체포·구금되었던 곳에 세워진 '3·15의거 기념탑' 등 무심결에 지나쳐 갔던 장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 장소만 남아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너무도 가깝게 살아가다 잊히는 것들이 있다. 장소와 장소들이 연결되자 그날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치 점과 점이 연결되어 살아있는 선이 되듯,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큰 빛이 되듯.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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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 정의라는 단어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구체적 실체를 알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체를 온몸으로 겪은 것은 분명하다. 2016년 국정농단과 2018년 사법농단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촛불혁명과 함께 되풀이하는 역사를 예측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돈다는 말이 무심하게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반복의 문제는 기억의 문제다. 그 기억을 되찾아 다른 걸음을 내딛는 일.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길. 민주화란 이름으로 뜻 모아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의 모습을 길어 올려야 할 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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