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진보진영 갈등 심화
집권 초 파트너십 무너져
경제·민생분야 공방 일상화

견고한 듯 보였던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노동계 '파트너십'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둔 남북관계 개선과 탈원전 정책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슈에서 '험한 말' 공방이 일상화되는 분위기다. 정부·여당 측이 그간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맞대응을 본격화한 것도 정권 초기와 다른 모습이다.

중심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논란이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5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탄력근로제 문제는 최저임금법 산입범위 개악과 마찬가지로 이 정부가 그토록 보호하겠다는 장시간·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라며 "그렇게 민주노총 등을 고립시켜 현안의 무사통과를 바라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얼마 전 임종석 청와대 정책실장의 "민주노총은 약자가 아니다"라는 발언, 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민주노총이 고집불통이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쓴소리를 겨냥한 비판이었다.

민주노총과 현대자동차노조는 정부·여당은 물론 광주시가 사활을 건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부영 현대차노조위원장은 14일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광주에 10만 대 자동차 생산공장이 들어서면 울산과 창원 등 기존 자동차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긴다"며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고용과 기득권을 지키고자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은 심지어 문재인 정부와 근본적 관계 재설정까지 고심하는 기류다. 50여 개 진보단체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가 친재벌·반노동 정책으로 '촛불 민의'에 역행하고 있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통령과 독대해 면죄부를 받고, 재벌체제 청산이 아닌 재벌 규제완화 타령만 이어진다. 적폐세력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 문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보건복지부에 지시한 국민연금 개혁도 도마에 올라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연금개혁을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이 과제를 회피하고 있다"며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 세대가 수용할 '책임'이라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지도자가 오히려 '부담'을 강조한다. 연금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혹평했다.

언급된 사례들에서 보듯 정부와 진보진영이 갈등 중인 사안은 대부분 경제·민생과 관련돼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추락하는 경제와 민생은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최대 요인이다. 근래 문 대통령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규제혁신"이라고 힘주어 강조하는 이유다. 그만큼 경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다급하고 절박하다. 친노동적·진보적 수단이냐 친자본적·보수적 수단이냐 가리고 따질 겨를이 없다는 이야기다.

집권 초기부터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많은 진보 의제에 성의를 보였음에도 비판과 반대를 넘어 '적폐세력' 운운하고 있는 것도 물론 정부의 인내심을 잃게 하는 지점이다.

노동계 출신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동계 측이) 선거 때만 표를 구걸한다는 식의 모욕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냐"며 "자기들 생각을 100% 강요하려고 한다. 너무 일방적"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은 예의 이런 틈새를 더욱 벌리려 애쓰고 있다. 윤영석(국회의원·양산 갑) 수석대변인은 15일 논평을 내 "정부는 불법을 자행하는 반민주, 반법치주의 민노총 세력과 결탁을 끊고 국민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야당과 진정한 협치를 복원하라"고 촉구했다.

그나마 정부에 위안이 있다면 여론조사상 지표는 여전히 진보층 지지가 굳건한 편이라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매주 진행하는 정례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을 긍정 평가하는 진보층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때나 낮을 때나 70~80%대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계 일각을 향한 정부·여당의 잇단 '강공' 배경에는 "이반된 진보층은 극소수"라는 이 같은 자신감도 깔린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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