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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의 미래를 묻다] (3) 헌책방을 살리려는 움직임-서울

큐레이션 접목·미래유산 지정…가치에 더하는 가치
시, 축제 개최 등 문화 알리기
청계천변 헌책방 주인 추천책
무작위로 나오는 자판기도 등장
"헌책은 우리 역사 품은 매개"

문정민 기자 minss@idomin.com 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대규모 상권이 발달한 서울에도 헌책방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학이 밀집된 신촌 일대와 벼룩시장이 펼쳐지는 동묘 등에서 헌책방의 모습을 간간이 찾을 수 있다. 부산의 명소 보수동만은 못해도 청계천변의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에도 헌책방 거리가 있다. 사실 헌책방 '거리'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임에도 무심히 지나치는 이들로 힘겨운 살림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헌책을 사고파는 공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해 화려한 도심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헌책방을 살리고, 헌책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또한 오랜 역사를 품은 헌책방은 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문화유산으로서 헌책방의 의미를 되새기고 보존 가치를 높이기도 했다. 헌책방과 한 발짝 벗어나 있을 것 같은 젊은 세대도 헌책방 지킴이로 나섰다. 대학생들이 젊은 감각을 반영한 창의적인 방식으로 헌책방 주인들과 함께 자생의 움직임을 꾀하고 있다.

◇200곳서 20곳으로…존립도 힘들어 = 청계천변 동대문시장을 대표하는 평화시장 1층에 자리 잡은 헌책방들은 마찬가지로 헌책 수요가 줄면서 점포수도 급격히 줄었다. 전성기 시절 약 200개가 밀집해 성업했지만, 현재는 20곳 정도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이들 중에는 존립 자체가 어려운 곳도 있다.

2평 남짓한 공간을 헌책들로 빼곡히 채운 책방 사이로 모자, 옷, 잡화 등을 파는 가게가 들어서 있는 이유다.

번쩍이는 네온사인도 화려한 간판도 없이 남루한 좌판에 깔린 헌책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근현대 서적과 각종 자료, 문학 전집, 철 지난 잡지에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때가 묻어 있다. 인근에 있는 동대문패션거리(두타몰), 디자인플라자(DDP) 등 화려한 불빛을 뽐내는 쇼핑몰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낡은 책을 파는 헌책방의 특성도 있겠지만, 흡사 회색빛이 깔린 느낌이다.

40년간 헌책방을 운영한 70대 헌책방 주인은 "가게를 내놓은 지 한참 지났는데 안 나간다. 남은 곳 중에서도 내놓은 집이 많다"며 "헌책방이 없어지면 옛날 우리 역사도 없어진다. 헌책방에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는 어떻게든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8월 서울시 여의도한강공원 서울색공원에서 열린 '한강 다리 밑 헌책방 축제' 모습. /문정민 기자

◇헌책방 존재 알리고 미래유산 지정도 = 서울시는 얼마 남지 않은 헌책방을 시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한다. 헌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통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시절 저렴한 가격으로 헌책을 구매했던 중장년층뿐 아니라 헌책방의 존재를 모르고 컸을 법한 젊은 세대들에게도 헌책방이 살아있음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서울도서관은 2015년부터 평화시장서점연합회와 함께 '청계천 헌책방거리 책 축제'를 열어 북 커버 제작, 헌책 판매, 작품 전시 등 헌책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헌책방 거리가 있음을 알리고 헌책 문화를 함께 공유하기 위함이다.

헌책방을 살리기 위한 활동은 청계천 헌책방거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소 헌책방, 시민 등이 내놓은 중고 서적을 싼값에 살 수 있는 '한 평 시민 책 시장'도 일정 기간 장소를 달리하며 6년간 진행하고 있다.

한강 몽땅 여름축제 하나로 열리는 '한강다리 밑 헌책방 축제'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1일부터 15일까지 펼쳐진 올해 행사에는 서울·경기·전남지역 헌책방 200여 곳의 고서와 단행본, 어린이 도서 등 10만 권을 전시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서울시는 또한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시민생활사적 가치를 인정해 2013년에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러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지녔다는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 청계천변 동대문 평화시장 1층에 자리잡은 헌책방들. /문정민 기자

서울 미래유산 가운데 단일 헌책방으로 유일하게 지정된 곳도 있다. 1972년에 처음 문을 연 국내 1세대 헌책방으로 알려진 공씨 책방이다. 역시 미래세대에 남겨주도록 보존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아 2013년에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정수 서울도서관 관장은 "헌책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게 아니다. 특히 절판된 책은 더 가치가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옛 시대의 정보와 역사를 전달해준다"고 말했다.

◇헌책방 지킴이로 나선 대학생 = 경기도 고양 스타필드 매장 내에 눈에 띄는 자판기가 있다. 각종 음료나 트렌디한 꽃을 파는 자판기가 아니다. 자판기에는 안을 볼 수 없는 상자가 전시돼 있다. 추리, 로맨스, 여행, 지식교양, 자기계발, 힐링 등 8개의 버튼도 새겨져 있다. 랜덤으로 책을 추천해주는 이색 자판기다.

현금이나 카드로 7000원을 결제한 후 읽고 싶은 장르를 골라 버튼을 누르면 헌책방 주인이 그것에 맞게 골라 놓은 책 한 권과 여러 상품이 함께 담겨 나온다. 설렘자판기에는 장르 외 책에 대한 힌트가 없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설렘'을 제공한다.

헌책에 어울리는 아날로그 감성과 책을 뽑는 재미를 입힌 자판기를 만든 이들은 국제 비영리 단체 '인액터스'(Enactus) 연세대지부 산하의 '책 it out'(잇아웃)팀이다. '인액터스 연세'는 기업가 정신의 실천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경영학회다.

청계천 헌책방거리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데 이르렀다. 지난해 6월 텐바이텐 대학로점에 처음 설치된 설렘자판기는 유동인구가 더욱 많은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헌책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헌책방 살리기 프로젝트 첫 출발은 온라인 판매 랜덤 북박스인 '설레어함'이었다. 책방을 오래 운영한 경험으로 도서 큐레이션이 가능한 헌책방 주인들이 소비자가 선택한 주제에 맞춰 직접 책을 골라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 7000원을 결제한 후 장르를 골라 버튼을 누르면 헌책방 주인이 골라 놓은 책 한 권이 여러 상품과 함께 나오는 '설렘자판기'. /책잇아웃

현재 이들이 직접 주도한 프로젝트는 종료됐지만,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 그 취지를 살려 도서와 상품을 구성해 시즌별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책 it out'의 팀장 채지민 씨는 "헌책방 주인들은 오랜 세월 서점을 운영한 경험에서 책에 대한 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찾는 손님이 줄면서, 이런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사그라들었다"라며 "헌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책을 보내주는 설레어함 서비스를 통해 헌책방의 경쟁력이 조금이나마 강화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말했다.

※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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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부 기자입니다. 유통.공공기관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보나 문의 내용 있으면 010-2577-1203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