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은 문화자산…옛 명성 되찾자"
70년 역사 자랑하지만 대형·인터넷서점 확대에 수요 줄어 경영난 심화
환경 디자인 개선사업 10월 문화축제 지원 등 지자체 활성화 노력 분주
"헌책방 매력은 다양성"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국에서 유일한 헌책방골목이다. 70여 년 전 형성된 이래 줄곧 책방골목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 역시 시대의 흐름을 피하지 못했다. 잇따라 문을 연 대형 중고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영향으로 여느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고령화까지 더해져 몇 곳은 매물로 나오는 등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오랜 역사를 품은 헌책방이 위기에 처하자 관할 지자체가 옛 명성을 되찾고자 나섰다. 쇠퇴한 헌책방 골목 환경을 개선하고, 헌책방 골목축제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헌책방 살리기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전경. 이곳도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이 등장하면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곳에는 현재 40여 개 점포가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문정민 기자

◇시류에 밀린 헌책방 골목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을 기점으로 형성됐다. 부산으로 온 피난민들이 자신들이 들고온 책들과 미군 부대에서 나온 여러 가지 책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점포가 생겨났다. 책이 귀하던 시절 헌책을 사고파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평일 오후 찾은 보수동책방골목은 한산했다. 200m에 이르는 좁은 골목 사이로 작은 책방들이 마주 보며 즐비하게 들어섰다. 양쪽으로 각종 고서와 만화책, 1970년대 풍미했던 사회과학 서적 등 다양한 책들이 쌓여 있다. 추억의 사전과 소설책, 잡지, 옛 교과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밀조밀 붙어 영업을 하는 책방 사이로 문을 닫은 점포도 제법 보인다. 책방을 지키는 이들은 70대 이상 고령자들이 주를 이룬다. 50~60대 중장년층도 더러 있다.

책방골목은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80여 점포가 들어서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이 등장하면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책방들은 카페, 공방, 미용실 등으로 모습을 바꿨다. 책방골목은 현재 40여 개 점포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이 매체에 잇따라 소개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났지만 되레 상인들은 매출 급감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임대료가 크게 오르면서 경영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헌책에 대한 관심보다 '명소'로 두드러진 책방골목을 찾았다. 방문객들은 책방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을 뿐, 책을 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방골목은 찬란했던 역사를 뒤로한 채 화려한 도시에서 밀려났고, 상인들은 하나둘 책방을 떠났다.

외국서적을 전문으로 수입해 파는 70대 상인은 "갈수록 헌책방이 안 되는 게 느껴진다. 젊은 사람들은 자꾸 새것만 찾는다. 헌책의 가치를 모른다"며 씁쓸함을 토로했다.

그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대형서점과 중고대형서점과 다르다. 헌책방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며 "상업적 가치로 본다면 다 문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 보수동책방골목축제에서 열린 한국 희귀 고서전.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중국 고서와 조선시대 고서 등을 판매하는 양수성(45) 고서점 대표는 "헌책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은 역사가 있다. 헌책의 밑바탕이 없으면 새책이 나오기 어렵다"며 "역사를 다룬 유명한 소설책도 옛날 역사책을 통해서 알고자 하는 정보를 습득했을 것이다. 신간 역사서 또한 그 옛날 역사서를 자양분 삼아 탄생했다"고 했다.

30여 년간 헌책을 팔아온 허양균(61) 대영서점 대표는 "상업성이 없어 외면받지만, 문헌적 가치가 높은 책들은 여전히 이곳으로 모인다"며 "시중 서점에서 아무리 뒤져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책을 비롯해 오래된 자료들을 헌책방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 중구, 환경 개선 추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 경영난과 임대료 상승 등으로 위기를 맞자 관할 지자체 차원에서 옛 영화를 되살리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방이 자리한 골목환경을 정비하고, 헌책방 특색을 살리는 지원을 하는 등 헌책방을 활성화하고자 발 벗고 나선 모습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문화자산으로 보전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서 진행하는 토요골목마당 행사 모습.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현재 부산 중구는 침체에 빠진 책방골목을 살리고자 환경디자인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부금 5억 원이 투입된 주요 사업으로는 상인들이 함께 모여 책을 파는 공동서재가 설치되고, 각 서점 앞에는 점포 개성이 담긴 마스코트 조형물이 세워진다.

서점 셔터에는 기존의 그래피티를 지우고 책방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캘리그래피가 입혀진다. 또 광장과 조명을 바꿔 책방골목을 젊고 밝은 느낌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환경 개선 사업은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는 방문객의 편의기능 측면에 주안점을 뒀다. 헌책방의 추억과 향수는 그대로 남겨 책에 대한 구매력을 잇는다는 복안이다.

부산 중구는 매년 열리는 책방골목 축제도 지원하고 있다. 보수동책방골목 번영회와 함께 매년 10월 보수동 책방문화축제를 개최 중이다.

올해도 15년째를 맞이해 지난달 19일부터 21일까지 '책마을로 가자'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1책방 1이벤트를 비롯해 나만의 책 만들어 보기, 책 읽어주는 마법사 등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졌으며 희귀 고서전, 책방 골목 주인들 애장도서전, 책방골목 단골들의 애장도서전, 1970년대 이후 노동·민주주의 관련 비매품전 등 눈길 끄는 전시회도 마련됐다.

또한, 책방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에서는 책을 콘텐츠로 한 다양한 문화 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관은 보수동 책방골목을 활성화하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자 2010년에 설립됐다. 현재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수탁해 운영하고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의 역사를 담은 사진과 50~70년대 유행하던 책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를 비롯해 책과 관련된 다양한 도서 기획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매월 책을 주제로 한 문화강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낭독회 등 공연 행사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음악, 영화 등의 다양한 장르에 걸쳐 강좌와 강습도 열린다.

▲ 보수동 책방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문화관 내부 모습. /문정민 기자

이렇듯 지자체 차원 보수동책방골목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지원과 활동이 추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헌책방을 민간 상업시설로 치부하기보다 역사적 가치가 담긴 공공자산으로 봤기에 가능했다.

박병률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 학예사는 "오랜 역사를 품은 헌책방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다. 특히 헌책방이 밀집된 이 공간은 문화자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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