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사 거닐며 잠시 숨을 고르다
흐르는 계곡 물소리
그윽한 음악이 되고
곱디고운 단풍 아래
소리길서 자연과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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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줄곧 공연에, 전시에, 행사에….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치르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가을이 끝나가는 것을. 정신을 차린 우리는 얼른 공연장에서, 미술관에서, 행사장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러 떠났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듯한 홍류동 계곡을 지나 한 폭 그림보다 아름다운 합천 해인사의 가을을 즐겼습니다. 해인사도 식후경. 산채 비빔밥으로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이날 마침 비가 내려 더욱 운치가 있었지요.
▲ 대적광전.

◇해인사 상가 단지

해인사 근처에 차를 놓고 우리는 먼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해인사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 해인사 상가 단지가 있군요.

식당과 숙박 시설이 여럿 있는 이곳은 산채정식 특화거리입니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감상하며 산채 비빔밥을 즐겼습니다. 슴슴한 된장찌개와 반찬을 곁들인 식사는 깔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 해인사 근처 산채정식특화거리 풍경.

◇가야산 소리길

"소리란 우주 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를 의미한다." 해인사 누리집 소리길 설명 한 대목입니다. 소리길은 가야산 입구에서 해인사 통제소까지 6㎞ 거리, 2시간짜리 구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가야산 품에 안긴 모양새가 되지요. 배를 든든히 한 우리는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일주문까지 소리길 일부 구간을 걸었습니다. 세 명의 기자는 각자 생각을 정리하며 걸었는데, 맘에 꼭 드는 풍경이 있을 때는 서로 불러 같이 감상했지요. 우주 만물과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을 한 것이지요.

▲ 가야산 소리길.

◇홍류동 계곡

백색소음은 귀에 쉽게 익고, 주변 소음을 덮는 작용을 합니다. 파도소리, 빗소리 같은 것이 여기 속합니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 입구까지 4㎞ 구간을 흐르는 계곡이 홍류동 계곡입니다.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 이를 투영한 흐르는 물조차 붉게 보인다고 그렇게 부른다지요. 홍류동에 흐르는 물의 선율, 마침 내린 비의 선율이 복합적으로 섞여 그윽한 음악이 되었습니다. 홍류동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가 고운 최치원 귀를 먹게 했다는데, 실제로는 물아일체 경지를 단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홍류동 계곡.

■ 해인사

팔만대장경 품은 한국 불교 성지

해인사는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이라는 뜻,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가리킨다.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이다) 사찰로 꼽힙니다. 무엇보다 가야산 자락에서 팔만대장경을 품은 사찰이지요.

소리길을 걸어 일주문에 다다르기 전 공덕비들이 길을 비추고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이라고 새긴 비석의 위엄이 상당합니다.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으로 걷습니다. 해인사 창건 설화를 품은 고사목이 눈길을 끕니다. 1945년 수령을 다해 둥치만 남았습니다. 해탈문을 통과합니다. 속세를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하니 한 칸 한 칸 내디뎌야 하는 계단의 가파름이 몸과 마음을 집중하게 합니다.

해인사는 화엄경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십니다. 그곳을 대적광전이라고 합니다. 비 오는 가을날 오후, 부처님 앞에 홀로 앉은 누군가의 등이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대적광전 뒤 가파른 계단을 다시 오르면 팔만대장경이 있습니다. 아래위 통풍구가 있는 건물들이 참 단정합니다. 바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경판전이지요. 빨간 줄 밖에 서서 통풍구를 통해 대장경을 봅니다. 8만여 개 판수에 8만 4000개의 경전 말씀이 있다는데, 하나의 말씀이라도 새긴다면 스스로 지혜를 구할 수 있을까요?

▲ 장경판전.

우선 양손에 뜨거운 차 한 잔을 들어야겠습니다. 경내에 책을 읽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창 너머로 왔던 길을 바라봅니다. 가을이 빚은 오늘이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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