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제일 로타리 클럽에서는 진주 신안동 시민녹지공원에다 최계락·이형기 시비를 세운다고 한다. 좋은 일로 여겨진다. 두 시인이 우리 경남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광복 공간에 등장하여 우리나라 문학사에 빗돌 하나 세울 만한 몫의 기여를 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최계락(1930~1970)과 이형기(1933~)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같은 진주출신이라는 점, 좀 시차가 있기는 해도 광복공간에 문단에 등장했다는 점, 국제신문 기자였다는 점, <二人>이라는 동인지를 내었다는 점, 그리고 시정신이 치열한 시인이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이형기의 말에 의하면, 중학교 재학시절 최계락은 이미 한국의 동요·동시단에 이름을 얻고 있어서 상당한 거리로 우러러 보였다는 것이었다. 최계락은 1943년 <주간 소학생>지에 <조각달>이라는 동요를 최초로 발표할 때는 아직 중학생이기도 전이었다.



중학에 입학하여 1944년 <문예신문>에 <고갯길>을, 1947년 <봉화> <소학생>지 등에 <해 저문 남강> 등을 발표했으니 광복공간에 이미 중학생 문인이면서 한국 동시단에 깊숙이 발을 들여 놓은 셈이다.



1949년 제1회 개천예술제가 개최되어 거기서 장원을 한 이형기는 이를 계기로 최계락을 만났고 이어 <문예>지에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시인이 되었다. 작품만 보고 추천을 했더니 서울에 온 이형기는 까까머리 학생이었더라는 서정주의 술회를 참고로 할 때 이형기 또한 조숙한 시인임이 분명하다.



두 조숙한 시인이 만나 <二人>이라는 동인지를 내고 이어 일정 시간 뒤부터는 부산 국제신문 기자로 함께 언론생활에 들어갔다.



동시인으로서 최계락은 1930년대에 동심천사주의의 극복이라는 현실지향의 동시운동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다 언어의 탄력을 붙였다. 그리하여 1920년대의 동시와 1960년대의 동시를 이어주는 허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형기는 초기엔 리리시즘으로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시비에 새겨진 <낙화>는 초기에 쓰인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60년대 이후에는 ‘충격의 미학’, ‘파괴의 미학’으로 불리는 존재론적인 시를 썼다. 난해시인 셈이다.



그 스스로 말한 바, ‘유독성(有毒性)’의 시를 쓴 것이다. ‘챔피언 벨트는 내놓기 위해 존재하고, 꿈은 무너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꿈의 옆구리에 비수를 꽂는 것이 시’라고 했다.



그냥 독자들이 들으면 아리송한 이야기이다. 시를 단순히 서정으로 적어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물음을 방법적으로 던지는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진주 신안동 시민녹지공원에 세워지는 두 시인의 시비는 하나의 돌을 두고 양면에다 시를 새겨 넣는다고 한다. 세우는 분들은 시비 동산에 시가 살아있게 하기 위해 시인의 개인적인 위상에 힘을 주지 않고 한 편이라도 더 시를 시민에게 제공해 주는 데다 뜻을 두고자 했다는 것이다. 양면에서 책의 양면을 펼쳐 놓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 위에/ 해가 지면 반짝 반짝 별이 흐르고//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 위에/ 해가 지면 밝은 달이 떨어지고요//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결은/ 해가 지면 별님달님 싣고 갑니다’는 최계락의 <해 저문 남강> 전문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 작품은 이형기의 <낙화>이다.

두 작품 다 신인 시절의 풋풋한 서정이 돋보인다. 꽈리소리를 들으면 이런 서정에 젖게 되리라. 10대와 20대 어우름에 씌어지는 시가 서정의 원형이 되는 것이어서 그런지 <낙화>는 지금 고등학생들의 애송시가 되고 있다.





다음에 세워질 시비들도 제대로의 몫이 있는 시인들의 잊혀지지 않을 좋은 시를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비를 세운 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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