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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18) 바람도 지나가게 하라 그 바람 다시 돌아와 머물게 하라(오르비에토·볼세나)

시간에 쫓기는 자여 어서와 쉬었다 가렴
국제슬로시티본부 있는 곳…삶의 속도보단 가치 중시

시민기자 조문환 webmaster@idomin.com 2018년 11월 09일 금요일

초고 상태로 인쇄하면 그동안 안 보였던 것이 잘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도 결재를 받기 위해 최종 인쇄된 서류에서 흠결을 발견했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색채론>을 출간할 무렵 괴테는 차라리 이 작품을 초고로 되돌린 상태에서 인쇄하여 결점을 잡은 후 다시 인쇄하고 싶어 했을 만큼이었다. 그의 <색채론>은 1790년에서 1810년 사이에 연구되었는데 그로서는 오랜 시간과 열정을 투입한 작품이었지만 그만큼 난제 또한 겹쳤기에 더 오랜 시간을 두고 작품을 수정이나 관찰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다시 초고로 되돌릴 수 없었다. 바로 코앞이 로마였기 때문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이다. 테르니를 떠난 괴테는 로마가 눈앞이라는 생각에 쉽게 잠조차 이룰 수 없었다. 옷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고 날이 밝으면 마차에 올라 마부를 재촉했다. 모든 소원 다 이뤄지고 마지막 소원 하나만 남은 사람처럼, 그 마지막 소원 이뤄지면 그 어떤 소망도 없는 사람처럼 그는 로마로 달렸다. 그 일념에 피렌체도 그냥 스치듯이 지나만 온 그다.

▲ 볼세나, 구태 여 느리게 살 자고말 하지 않아도 괜찮은 도시다.

◇자발적 침묵 관찰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5년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침묵으로 경청하는 것을 허락했다. 최소 2년은 의무적으로 침묵 경청을 하도록 했다. 이것을 '피타고라스 방식의 침묵관찰'이라고 한다. 죽어도 나는 5년은커녕 2년도 불가하고 또 그렇게 할 자신도 없지만 정해진 3개월을 나름대로 자의든 타의든 피타고라스 방식을 따라 해 보고 있다. 홀로 떠나는 장기 여행은 일종의 자발적 침묵 관찰이기도 하기에.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장기 여행에 체력도, 건강도 따라 줘야 하지만 가장 어려운 상대는 고독이라는 친구다. 3년이 아니기에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니 1년이나 6개월이 아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억지 춘향 식으로 타인을 생각하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로마에 입성하기 전에 내가 가야 할 곳은 오르비에토(Orvieto)다. 여행을 초고로 되돌리는 작업이기도 하고, 작은 침묵 관찰이기도 하다. 오르비에또는 어쩌면 고독한 성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고독을 자청했거나 고독의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난 사람일 수 있다. 바위틈에 집을 짓고 살았으니 그 얼마나 고독했을까? 오르비에토 역에 도착해서 하늘을 우러러 봐야 보이는 곳이 오르비에토라는 도시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을 돌아보고 있지만 이처럼 바위 위에 도시를 만들고 사는 동네는 처음으로 만났다. 도시를 올라가려면 모노레일을 타야 한다. 물론 자동차 진입도 허락은 되지만 기본적으로 방문자들은 차량보다는 이사용 사다리차처럼 생긴 작은 열차에 짐처럼 실려야 한다. 이 도시의 성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깎아지른 듯 직각으로 서 있는 암벽 위에 도시가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다. 난공불락의 성이라면 바로 이런 성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 어떤 외적도 침입 불가, 정복 불가의 성이었다.

▲ 오르비에토 전경. 200m가 넘는 바위산 위에 도시가 '얹혀'있다. /시민기자 조문환

◇느림의 원조 도시

반 바퀴 정도 돈 후에 확신이 든 것은 이 도시가 슬로시티를 주창할 수밖에 없었으리란 것이다. 도시의 크기로, 속도로 다른 도시들과 경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면적으로는 도시의 동(洞) 정도, 농촌의 하나의 마을이나 이(里) 정도의 면적밖에 안 된다. 이 같은 도시가 크기로 승부를 걸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속도는 더더욱 절망적이다. 길어야 2㎞ 정도밖에 안 되는 곳에서 무슨 속도 경쟁을 하겠는가?

그러니 아예 느림을 부르짖었다. 느림으로 경쟁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세계만방을 향해 느림이라는 것을 주창해버렸다. '내가 앞장서서 느리게 살 터이니 당신들도 우리를 따라서 해 보시오'라고 말이다. 그 주창에 따라 나선 도시가 세계적으로 300개가 넘는다. 속도나 크기를 경쟁 단위로 삼았다면 늘 꼴찌에 머무를 도시가 느림의 원조가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들인지 모른다. 참아도, 참아도 이겨낼 수 없는 고독을 해결할 방안으로 높은 곳에 머무는 방식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찾아 들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니 고독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친구가 되기 위해 스스로 찾아왔다. 이 원리를 오르비에토 사람들은 일찍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빗장 속에 갇혀 살았던 시대를 반성했다. 그 빗장을 풀고 새처럼 날아오르는 것을 택했다. 아무리 강한 성일지라도 무너져 내리지 않은 성이 없었다. 세상에 그 어떤 난공불락의 성도 결국에는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러니 타의에 의해 정복을 당하느니 차라리 빗장을 풀고 모두를 품었다.

오르비에토 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키만 크고 야윈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서서 농촌 마을로 이어져 있다. 왜 이 도시에 이 나무가 많은지 궁금했다.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막아서지 않고 지나가도록 하기 위함일 수 있다. 바람과도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람이 가는대로 두겠다는 뜻이다. 속도가 아닌, 크기가 아닌 다른 가치를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언어 체감의 법칙

오르비에토에서 언덕을 넘어 서쪽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사십 분가량을 가면 볼세나(Bolsena)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오래된 성이 있고 여름에는 축제도 여는 동네다.

큰 호수를 끼고 있는 이 마을은 차라리 국제슬로시티본부가 있는 오르비에토보다 더 무한정 느리다. 느림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는 것처럼 보였다. 호숫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해 지는 줄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지켜봤던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내가 버스를 타고 떠날 때까지 30분도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적어도 50년은 됐을 법한 작은 트럭을 가진 한 아저씨는 그 좁디좁은 골목길에서 자동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 골목길 중간 즈음에 있는 오래된 이발소의 점잖게 보이는 이발사 양반은 카메라를 향해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누구나 눈인사요 '본주르노'를 입에 달고 살았다. 느리게 살겠노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아니 그 단어를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의 시집 <바람의 지문>에 '언어 체감의 법칙'이라는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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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말할 때 평화는 떠나 버렸다 / 자유를 노래하자 자유는 억류되었다 / 평등을 부르짖자 평등은 기울어져 버렸다 / 사랑한다 말함으로 사랑은 허울뿐이었다 / 보고 싶다는 말에 타는 가슴은 식어 버렸다 / 추하고 지저분한 저 언어 덩어리들

말이라는 것은 그렇다. 말하지 않고 가슴에 품고 있어야 진정한 소망이 되고 바람이 된다. 어쩌면 느리게 살겠다고 말하지 않은 볼세나가 더 느림의 진수를 보여주고 참다운 느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에 늘 서툴다.

무엇을 하겠노라고 선언한다는 것은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볼세나는 바람을 지나가게 하는 동네가 아니라 바람도 쉬게 만드는 동네로 느껴졌다. 해질 녘에 오르비에토 성에 불이 하나둘 밝아 왔다. 높은 곳에 머문 자들의 고독이 시작되는 시간임을 알리는 신호다. 굳이 고독하지 않다고 알리는 신호가 '나는 고독합니다'라는 말로 들렸다. /시민기자 조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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