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치던 그 겨울날에서 너무 멀리 왔다. 해서, 또 잊을 뻔했다. 외가 쪽 막내 사촌 동생이 올해 고3이라는 걸. 지난해 이맘때 엿을 보낼 뻔했었지 아마.

나는 내 수능점수에 만족했다. 중고교 시절 내내 성적은 기복이 없었고 마침내 닥친 수능성적표에도 평소 모의고사 때와 비슷한 점수가 찍혔다. 성적표 앞에서 인상 한 번 쓴 적 없는 부모님 덕에 나와 동생들도 애면글면하지 않는 편이고, 더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길로 꿋꿋이 가겠다고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놓은 터였다. 대학별 원서를 앞에 놓고 치열한 눈치작전을 모의하던 교사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좀 이방인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더 안달이 난 어느 선생님이 입시상담 중에 말했다. 너는 크게 되지는 않겠다 인마.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굵고 짧게 살길 원하는 편은 아니다. 가늘고 길게 살고픈 마음도 없으나 언론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거나 세계평화를 위해 한 몸 바치겠다거나, 하물며 고속 승진 같은 끓어오르는 야망을 안고 살지도 않는다. 그저 내 몫의 생을 잘 견디어내고 싶다. 아직 안개 낀 공중에 혼자 떠있는 듯 불안하고, 그래서 저무는 계절마다 흔들리지만, 그러니까 그건 몰라서다. 닥쳐올 나날들이 어떠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대체 누가 남의 미래를 두고 작겠다 크겠다 낫다 못하다 말할 수 있나. 아직 오지 않은 타인의 앞날에 비교형용사를 가져다 붙이는 짓은 오만하고 무례하다. 더구나, 뭣이 큰 건디, 대체 뭣이(라고 그 선생에게 물었어야 했는데…).

11월 15일 수능시험지를 받아들 모든 이를 응원한다. 그대의 수능점수가 그대의 미래를 규정하는 건 아니라고. 타인의 평가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살아보니 그렇더라, 라고 말한들 지금은 들리지 않겠지. 곧 만날 사촌 동생에게는 암말 않고 용돈이나 두둑하게 쥐어줘야겠다. 그런데 진짜,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수능점수 따위. /임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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