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색있는 가게로 활기 찾는 동네
시민이 주체가 된 지역행사 눈길

낙엽이 거리를 물들이던 황금 같은 일요일, 우리 동네에서 작은 마켓이 열렸다. 차량 소통이 많은 대로변에 자리 잡은 어느 카페 앞에서 열린 행사였다.

빌라 단지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우리 동네는 사업체가 거의 없는 주택지역이다. 좁은 도로를 따라 학원들이 줄지어 있고, 변변한 문화시설도 없는 동네라 나는 종종 삭막하다고 느끼곤 했다. 인구와 사업체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 두 해 전에는 도시재생 활성화 우선 지역으로도 지정되었다. 그런 우리 동네에 최근 2년 사이 특색 있는 가게들이 꽤 생겼다. 특히 청년 사장들이 창업한 카페와 디저트 가게들이 SNS상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 덕에 이제는 서울의 '경리단길'에서 따온 애칭도 생겼다.

지난 일요일에 열린 마켓은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인근 동네에 창업한 청년 사장들이 함께 만든 행사였다. 대로변에 있는 가로수 사이에는 신선한 꽃부터, SNS에서 한창 인기가 많은 마카롱, 진한 향으로 유명한 커피, 옷, 방향제, 직접 만든 액세서리 등 작은 가판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유행에 맞고 개성 있는 상품 덕분에 가판들이 소소한 규모인데도 충만한 존재감을 뽐내 생각보다 많은 주민을 불러 모았다.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생기를 잃어가던 지역에 청년 창업가들이 모이니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문화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유명할 것 없던 동네에 별명이 생겼고, 청년들이 꾸민 마켓은 동네에 즐거운 색깔을 입히고 있다. 지역문화를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도 해봤지만, 그 어떤 행사보다도 더 생동감 넘치는 지역문화의 현장에 속한 느낌이었다.

지역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지역주민들이 함께 누리는 생활양식'이다. 하지만 지역문화가 곧 관광자원을 내세운 이런저런 '축제'로 대표되는 것은 지역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지자체인 경우가 흔해서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주민들의 생활 속에서 특색 있는 문화가 자생적으로 탄생하기 어렵다. 동네 청년 사장들이 스스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들이 기획한 마켓이 (상업성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이유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지역축제 사이에서도 새 바람이 분다. 창원시에서 주관하고 청년 지역문화 기획자들과 지역 대학생들이 함께 기획한 '문화로 시끌벅적' 행사가 지역문화축제에 변화를 가져올 예정이다. 대로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많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있지만, 예술가와 농민이 같이 진행하는 '예술농장' 등 다양한 시민 주체가 참여하는 코너가 가장 흥미롭다. 파급력은 있지만, 시민의 생활과는 다소 동떨어진 K-POP, 특산물을 내세운 축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을 주제로 한 교류와 공감에 초점을 맞춘 지역문화축제기 때문에 이번 주말동안 열릴 '문화로 시끌벅적' 행사는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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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대로든지 좁은 가로수 사이 공터든지 그 규모에 상관없이 길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우리가 지나는 길이 지역문화로 채워져 다양하게 재해석된다면 쇠퇴하는 동네는 물론 도시의 지역문화 자원이 개발된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졌을 정도로 관계가 단절되어있는 요즘, 우리가 각자 걸어가던 길 위에서 꿈틀대는 지역문화가 지역주민들을 한데 모아 삶의 질을 향상해주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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