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맞은 청소년밥차
금요일 오후 6시 합성동서
관 도움 없이 자발적 운영
차·농산물 주민 지원 활발
'청소년쉼터 설치'성과도

"사회복지사라서, 청소년 지도사라서가 아니에요. 잠깐 방황하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이자는 거예요."

어스름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청소년들을 보며 그저 '밥은 먹고 다니는지' 묻고 싶었고, '챙겨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 모여 '청소년밥차' 시동을 걸었다. 청소년밥차 이은경(50) 대표를 비롯한 8명 추진위원은 가능성을 고민하기보다 각자의 역할을 먼저 찾기 시작했다. 이후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역민 참여와 감동을 먹고 달린다는 '청소년밥차'가 지난 10월 1주년을 맞았다. 청소년밥차 운전사인 이 대표를 만났다.

▲ 청소년밥차를 찾은 청소년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다. /청소년밥차추진위원회

◇"행정 지원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이 대표는 유소년 축구단 '찬란한 FC 사회적 협동조합' 단장이다. 축구단 사무실이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에 있다.

함안에 사는 이 대표가 합성동을 왔다갔다하면서 눈여겨 본건 늦은 밤까지 오갈 데 없이 배회하는 청소년들이다.

"24시 커피숍·패스트푸드점에 있는 몇 명에게 늦은 시간까지 이런 곳에서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집에 가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밥이나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됐어요. 지역도 단체도 다른 사회복지사들이 모여 얘기하다가 우리가 밥이라도 챙겨주면 어떻겠냐고 뜻을 모았어요."

그때가 2015년 겨울이다. 2016년 청소년밥차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필요한 종잣돈 마련에 나섰다.

콜팝.

함안 강주해바라기 축제에서 커피를 판매해 밥차 운영기금을 마련하고자 했다.

"커피 판매로는 인건비도 못 건졌으니 폭삭 망했다고 봐야죠.(웃음) 숫자상으로는 망했지만 청소년밥차에 동참하려는 분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어요. 행정 지원 없이 시민들 동참으로 운영하고 싶었고, 지금까지 넉넉한 살림으로 잘 운영되고 있어요. 쌀·버섯·양파 등을 내놓는 농민들, 빵이나 부엌을 내주는 상인들, 십시일반 후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한국지엠 노조에서 차량 지원을 받은 후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음식 재료 지원이 많아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 100인분을 마련하는데 평균 20만 원이 든다.

그리고 청소년밥차가 운영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봉사자들 덕에 부족함이 없다.

"봉사자로 참여했던 허성무 창원시장이 당선된 후 안정적인 운영을 제안하며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거절했어요. 지원을 받으면 누군가는 서류작업을 해야 하고,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 취지와 맞지 않아요. 지금처럼 지역민과 함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풍족하면 더 나누면서 운영하고 싶어요."

부추전 볶음밥.

◇"왜 마산 합성동이냐고요?"

이 대표가 청소년밥차를 운영하면서 궁극적으로 뜻한 바는 합성동에 '여자 청소년 단기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24시 커피숍·패스트푸드점에서 밤을 보내며 집에 가기 싫다는 여자 청소년을 보면서 밥을 제때 먹지 못하는 성장에 대한 걱정보다 각종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더 염려됐어요. 이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보호해줄 만한 시설이 있을까 찾아보니 없더라고요. 지난해 말 밥차 운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봉사자들에게 이슈화를 제안하고 쉼터 필요성 목소리를 냈어요."

청소년쉼터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위원을 모집했다. 이 대표는 "공개 SNS에 당당하게 실명과 휴대전화 번호를 밝힌 시민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그 결과, 결론부터 밝히면 '창원시립 단기 청소년 쉼터(여자)'는 2020년 3월부터 운영된다. 허 창원시장이 후보 때 공약화해 당선 후 지난 8월 설치·운영을 결정했다. 꼭 합성동에 쉼터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소고기덮밥.

"지역과 상관없이 가출한 청소년이 처음 찾는 곳이 시외버스 터미널이에요. 도내 시·군 청소년들이 가출해서 찾는 곳이 창원이고 1차 관문이 합성동인 셈이죠. 특히 합성동은 청소년이 노는 비용이 싼 지역이에요. 여기서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부터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찾기 어려워요. 특히 여자 청소년은 짧게는 3일 만에 돌아올 수 없는 잘못된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다행히 합성동에 쉼터가 생깁니다."

작년 10월 27일 청소년밥차 첫 나눔 메뉴는 김밥이었다. 청소년들의 저항도 있었다. '이런 걸 왜 줘요?', '독 탔어요?'라며 한껏 경계하는 청소년들에게 봉사자들은 "밥은 먹고 노래방 가라", "밥을 먹고 술을 먹어야 한다"며 경계심을 낮추고 다가섰다. 1년이 지난 지금, 청소년밥차는 찾아다닐 필요없이 1시간이면 동난다. '밥차 고객'이 '밥차 봉사자'로 찾아와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맛이요? 맛없을 수가 없죠"

청소년 밥차 메뉴는 다양하다. 돼지고기두루치기 덮밥, 마파두부, 유부초밥과 과일 화채, 규동, 열무비빔밥과 부추전, 샌드위치….

메뉴는 지원받은 음식 재료와 앞서 찾은 청소년들에게 기호를 물어 결정한다.

"아이들이 인스턴트음식에 길들어 있다고 어른들이 오해하는 것 같아요. 버섯을 잘게 다져 샌드위치에 넣었더니 소고기냐고 묻고, 아주 잘 먹더라고요. 찾는 청소년 중 단골 손님이 30% 정도 돼요. 추운 겨울엔 맛있게 잘 먹었다고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수를 사다 건네주거나,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으로 핫팩 사다주고 담요를 가져다주기도 해요. 매주 감동이에요. 밥이 맛있었다는 거겠죠?(웃음)"

▲ 청소년밥차 이은경(맨 왼쪽) 대표와 추진위원·봉사자가 활짝 웃고 있다. /청소년밥차추진위원회

지난 5월부터 8월까지는 사회적기업인 해피푸드 도시락 업체에서 도시락 세트를 지원해 봉사자들은 나눠주는 역할만 했다. 지역민들의 아낌 없는 재료 지원은 지역아동센터나 노인시설에 나눈다. 나눔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다.

"처음엔 주변 상가에서 싫어하더라고요. 1년이 지난 지금은 고생 많다고 따뜻한 음료를 내주기도 하고 전기가 필요하면 전기도 연결해줘요. 비가 오는 날은 방수막을 쳐주기도 하고요. 청소년 복지가 정책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동참이 절실하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사회복지사, 청소년 지도사가 아니어도 합성동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청소년들이 위험에 노출되면 자기 자식 일처럼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해요."

청소년밥차는 금요일 오후 6시면 어김없이 합성동 터미널 일원에서 청소년들을 부른다.

"얘들아, 밥은 먹고 다니니? 와서 먹고 놀아!"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