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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꺼낸 말]하재청 <사라진 얼굴>

30년 교직생활의 끝, 그 후에 남은 부끄러움에 대하여
끊임 없이 희망 찾는 시인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8년 11월 08일 목요일

"한 매듭을 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 시집 첫 장에 나오는 시인의 말 첫 문장. 무엇을 정리하려는 걸까.

표지 뒷면 시인 소개를 살핀다. "2018년 진주 제일여고 국어교사 퇴직 후 현재는 고향의 푸른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창녕에 사는 하재청 시인의 시집 <사라진 얼굴>(2018년 10월)은 30년 교사 생활을 떠나 보내는 어떤 의식 같은 시집이다. 굳이 부제를 달자면 '나는 어떤 교사로 살아왔나' 정도가 될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났다/ 낙인처럼 몸에 찍힌 날짜 정확하게 기억하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는 출소하는 죄수처럼 비어져 운다 (중략) 그동안 근엄한 표정 얼마나 지었는지/ 비우고 버려지니 (중략) 누구와 함께하는 생이란 이런 것이다/ 유통기한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 이제 그만 나서라" ('유통기한' 중에서)

시집 뒤에 실린 산문에서 시인은 자신이 비겁한 교사였다고 고백한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정한 희망의 이유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적지 않은 부채만 떠안은 채 아이들 곁을 떠났다. 떠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나의 뒷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궁색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였다. 나는 당분간 이 궁색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 같다." (산문 '희망의 이유' 중에서)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이 궁색한 마음이 결국 시가 되었다.

"친구야, 이제 교실에 잘 도착했겠지/ 옥상 난간의 마지막 발자국 수습하여/ 네가 도착한 곳은 또 다른 감옥이 아니더냐 (중략) 안락한 몸에 도달하기 위하여 몸부림친/ 길고 긴 이승의 발자국 아직도 선명한데/ 나를 위해 흥겹게 향불을 올리고/ 돌아가던 길이 그리도 즐거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렸더나?" ('문상' 중에서)

이처럼 희망을 찾지 못한 교직 생활을 이어온 그의 발걸음은 아프다. 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가 시를 계속 쓰는 이유다.

"희망의 이유는 항상 자기를 초월한다. 인간이 아주 이기적인 것 같아도, 적어도 절체절명의 절망은 인간을 가장 인간적으로 돌려놓는다." (산문 '희망의 이유' 중에서)

하 시인은 2004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와 에세이, 120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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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