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 토론 자리서도 외국어 범람
처음엔 낯설지만 바꿔쓰면 익숙해져

서울시청에서 먹거리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계속되는 발언들의 단어가 그러잖아도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발언이 나왔다. 곧 진행되는 사업에 관한 얘기가 오고 가면서 한 사람이 우리가 '뭘 먹을지를 얘기할 건가', '어떻게 먹을지를 얘기할 건가'라고 말을 하면 될 것을 "왓 투 세이 스토리 오브 이팅", "하우 투 세이 스토리 오브 이팅"이라고 말했다.

내가 제안했던 사업인 '먹거리 우리말 바로 쓰기'가 채택되어 그 얘기도 토론 순서로 잡혀 있는 날이었다. 우리 땅, 우리 농산물을 강조하면서. 더구나 그 얘기를 하는 자리에서 하는 말과 쓰는 글은 온통 외래어와 외국어 범벅이었다. 회의 주제마저도 무슨 무슨 '마스터플랜'이었다. 크고 작은 행사들도 '포럼'과 '콘퍼런스'가 '토론회'와 '집담회'를 밀쳐내는 현실이기도 하다.

세종로 한가운데 우뚝 앉아 계시는 세종대왕이 내려다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눈병이 나 가면서 만든 한글. 극단적인 반대세력들을 설득하며 완성한 한글을 후손들이 제대로 쓰기는커녕. 비틀고 잘라먹고 온갖 상처를 내고 있을뿐더러 아예 영어에 중독되어 자기가 중독된 줄도 모르고 우쭐대며 씨부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질 듯하다. 세종로 높은 걸상에 앉아 둘러보면 온통 영어들이 나부끼고 우리말로 썼다 해도 영어 발음들이니 세종대왕도 읽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간판투성이다.

일본 제국주의 때는 그래도 위안 삼기를 나라를 잃었으니 얼과 글을 잃었다고 해도 되었지만, 지금은 백성들이 앞다투어 제 나라말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유네스코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배우기 쉬우며 기계화에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등재되어 있음에도 자기 것 소중한 줄 모르고 끝 모를 훼손을 되풀이하고 미국 혼, 미국 문화가 담긴 영어를 함부로 쓰는 후손들이 거의 정신병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서 어제 또 어떤 모임에 갔는데 새로 단장한 사무실에 사람들을 초청하여 작은 잔치를 벌이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곳 역시 나오는 얘기라고는 "리모델링 오픈식"이라느니 "뉴 빌드 커팅식"이라는 말이 오가고 있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말은 얼이고 정신이다. '신토불이'이듯 우리 얼과 정신은 우리 먹거리, 우리 옷, 우리 집, 우리글과 말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서울시의 내년 사업으로 잡힌 '먹거리 우리말 바로 쓰기'는 별 게 아니다. 먹는 것은 곧 우리 몸이고 우리 정신이고 우리 마음이니 먹거리 말들을 우리말을 살려 쓰자는 것이다. 서울시 먹거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식물식(채식)을 통해 먹거리의 안전성, 건강성, 보장성, 상생성을 살리자고 제안했고 또 하나가 바로 먹거리 우리말 쓰기다. 우리 음식, 우리말이 연결되어 우리 농산물, 우리 농촌, 우리 농산물 인식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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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쿵저러쿵 많은 얘기가 오가다가 합의에 도달한 행사 이름은 '새 단장 흥 잔치'였다. 리모델링을 '새 단장'으로, 오픈식을 '흥 잔치'로 한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흥이 절로 난다. 우리가 클럽이나 서클이라는 말을 쓰다가 '동아리'로 함께 쓰게 된 것은 백기완 선생의 노력이 크다. 그땐 다들 서클이라고 불렀었다. 동아리라는 말이 왠지 촌스럽고 생경했다. 그러나 자꾸 쓰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고 정겹다. 말과 글은 가랑비에 옷 젖듯 내 영혼과 마음을 적셔온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투 마사루 지음, 나무 심는 사람)에 잘 설명되어 있다. 지켜야 할 우리 것과 받아들여야 할 남의 것을 잘 골라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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