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가정폭력 행위자 처벌
인권 침해하는 중대 범죄로 인식해야

서울 강서구 아파트 살인 사건을 보며 2004년에 발생했던 마산의 가정폭력 사건이 떠올랐다. 이 사건은 초기 가정폭력 사건으로 알려지기보다 토막살인 사건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딸과 엄마의 진술을 통해 오랜 세월 가정폭력에 시달려왔음이 알려졌고 지역의 상담소와 단체들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대책위를 꾸렸다. 당시 나는 공동대책위에 소속되어 활동했었다. 시신 훼손으로 보아 잔인한 계획범죄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이 사건은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전형적인 가정폭력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지원하며 수도 없이 울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건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강서구 사건의 경우 사망한 사람이 가정폭력의 피해자이고 마산 사건은 가정폭력 가해자라는 점이 다를 뿐 14년 전에 발생한 가정폭력과 현재의 가정폭력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가정폭력은 여전히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부부 싸움, 가족 내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폭력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가정을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둠으로써 가해자에 대한 처벌 또한 소극적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폭력과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여전히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이로 말미암은 죽음을 실제로 목격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8만 건으로 2013년과 비교해 약 74% 증가했다. 그러나 신고 건수 대비 검거율은 평균 13%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 구속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 강서구 사건 가해자 역시 2015년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불구속 상태에 있었다.

2004년 당시, 가정폭력 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 접근금지명령, 수강명령 등의 조치가 현실성 없다는 지적과 함께 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지적을 다시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 불벌죄'는 만성적이고 일상화된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사는 상황, 보복폭행에 대한 두려움 등 가정폭력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폭력의 상황에 내버려 두는 것과 다름없다. '접근금지명령' 역시 위반해도 현행법상 체포할 수 없고 과태료만 부과할 수 있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가정폭력 재범률의 지속적 증가는 수강명령이 실효성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가정폭력특례법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정의 유지가 목적이라면, 그래서 가정의 유지를 위해 가해자의 처벌에 소극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이 법은 당연히 개정되어야 한다. 가정폭력은 가정 보호 사건이 아니라 형사 사건으로 엄중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당시 가정폭력 관련 상담을 오래하신 분들께서 '가정폭력은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나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가정폭력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이며 가정폭력에 대한 대응이 적절하지 않으면 그 대상이 피해자가 됐든 가해자가 됐든 결국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끔찍한 사회문제이다. 죽음을 동반한 가정폭력은 현재까지 수없이 발생했고 이대로라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죽어야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해자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똑같이 분노하고 똑같은 대책을 요구하며 똑같이 우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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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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