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 피지배층 구원·소망의 상징
보살이면서 부처이기도 한 존재
'반가사유상'도상으로 유추 가능
새로운 시대 향한 표상으로 전승

◇미륵보살? 미륵불?

미륵(彌勒)은 범어로 Maitreya, 사랑, 자비, 친구 등의 의미가 있는 'matri'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한자로 번역할 때 자비(慈悲)의 보살, 자씨(慈氏)보살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이 미륵은 어떤 때는 보살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처라고도 한다. 분신술을 쓰는 것도 아니고 무슨 영문일까?

미륵의 성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륵은 석가모니만큼 아주 많은 경전에서 다양하게 다뤄지는 부처이다. 이 미륵의 가장 큰 특징은 석가모니를 이어 미래에 나타날 존재라는 것이다. 석가모니와 같은 시대에 교화를 받으며 수도하다가 미래에 부처가 될 거라는 약속을 받은 미륵은 도솔천으로 올라가 보살로서 수행하다가 56억 7000만 년 후 지상으로 내려와 미륵불이 된다. 그리고 용화수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이끈다. 그래서 미륵은 보살이기도 하고 부처이기도 한 존재이다. 그리고 이 미륵이 내려올 때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왕은 전륜성왕(轉輪聖王, cakaravartin, 차크라바르틴)이라 한다. 전륜성왕은 글자 그대로 보륜(바퀴) 네 개를 굴리면서 세상을 통치하는 불교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이다.

이 과정에서 미륵에 대한 신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미륵이 부처로서 이 세상에 내려와 깨달음을 주기를 바라는 미륵하생신앙, 그리고 56억 7000만 년이 까마득하게 느껴져서인지 현세에서 덕을 쌓아 미륵이 있는 도솔천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미륵상생신앙이다.

▲ 사진 1 - 석탑 한 기와 절집 1채로 구성된 1탑 1금당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부여 정림사지 전경.

◇신라불교 도입 당시의 미륵 - 사회통합의 중심 미륵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될 때 이차돈은 왕이 절을 지으라 했다면서 천경림에 있는 나무를 베었다. 천경림은 아마 기존 세력들의 신성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화들짝 놀란 귀족들은 크게 반발해 이차돈의 목을 쳤다. 불교를 받아들이려는 왕과 기존 신앙을 고수하려는 세력들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 이야기이다. <삼국유사>가 기록하는 것처럼 당시 이차돈의 죽음에 기이한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불교가 공인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왕과 신하는 타협점을 찾았을 것이고 그 상징이 천경림에 건립된 흥륜사(興輪寺)이다. 그런데 어떻게 타협이 가능했을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미륵신앙에서 찾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흥륜사 주지 진자(眞慈)는 주존(主尊)인 미륵상 앞에서 미륵이 화랑으로 화신해서 이 땅에 나타나길 빌었다. 진자라는 이름도 미륵이 자씨보살인 점을 생각해 보면 미륵과 관련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김유신이 수련하던 신선사에도 미륵이 모셔져 있고 그가 이끄는 화랑의 무리는 용화향도라 불렀다. 이렇게 화랑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륵은 귀족세력이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왕도 적극적으로 미륵신앙을 받아들였다. 흥륜사를 건립한 진흥왕은 큰아들 이름을 동륜, 작은아들은 철륜(혹은 사륜이라고도 전해진다)이라 지었다. 둘 다 전륜성왕이 사용하는 신물의 이름이다. 미륵이 오는 시대의 왕이 전륜성왕임을 생각하면 왕과 귀족 모두 미륵에서 새로운 시대의 타협점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 사진 2 - 가운데 목탑을 중심으로 한 영역과, 좌우로 석탑을 중심으로 한 영역 3개가 모여있는 미륵사지 복원 모형, 뒤편에 보이는 산이 용화산이다(미륵사지유물전시관).

◇백제불교에 나타나는 미륵 - 새 시대를 꿈꾸다

백제 후기 중흥을 이끌었던 무왕은 사비를 떠나 익산에 새 도읍을 꿈꾸면서 미륵사를 지었다. 전설에 의하면 무왕부부가 사자사로 가던 중 용화산 아래 큰 못에 이르자 미륵삼존이 나타났고, 왕비가 이곳에 절을 세우길 원해서 만든 절이 미륵사다. 그래서 못을 메우고 절을 세우게 되는데 절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이 무렵 일반적인 절의 구조는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식이라 해서 탑 하나에 건물 하나가 세트로 있는 형태였다(사진 1). 그런데 미륵사지에는 이렇게 독립적으로 완성된 절 세 개가 한 곳에 모여 있다. 얼핏 봐도 미륵과 관련된 상징들이 넘쳐난다. 세분의 미륵을 만났고, 용화산 아래 절 세 개가 한 곳에 모여 있다(사진 2). 미륵이 이 땅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 세 번 설법하라고 멋진 상을 차려 놓은 게 미륵사다. 그럼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왕은 누구? 전륜성왕이다. 무왕은 대놓고 미륵사를 통해 본인이 전륜성왕임을 선언했다. 익산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사진 3)

이런 수많은 기록이 만들어지던 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미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시기 불상들은 대부분 선정인, 시무외인 여원인을 하고 있어 누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미륵은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도상이 있다. 반가사유상이다. 반가는 결가부좌에서 한 발만 풀어 내린 모습이다. 그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한 손을 턱에 괴고 깊은 사유에 빠져있다. 한 연구자의 말에 의하면 "사유는 인간과 신이 동시에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민병찬)"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두루두루(彌·미) 다스리는(勒·륵) 행동으로 부처와 보살, 인간과 신 사이를 잇는 존재가 지금 우리가 보는 반가사유상일 것이다.

▲ 사진 3 -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 사진 3-1 -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미륵은 현재형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의 미륵이 더 자연스레 남아 있다. 피지배층들의 구원의 상징으로서의 미륵이다. 후고구려 궁예가 미륵을 자처하면서 세상을 흔들었고, 고려 말 화순에는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우면 개벽이 일어난다고 믿은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전하는 운주사가 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역시 후천개벽을 꿈꾸는 동학농민들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후천개벽은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면서 전후 시기를 선천과 후천으로 구분하면서 구체화되었는데, 이후 대부분의 우리나라 신종교에 채택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새 세상이 열린다는 것인데 미륵은 새 세상을 이끄는 주인으로 언제나 함께했다. 실제로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도 미륵임을 자처했고, 원불교 종지 가운데도 미륵이 곧 세상에 내려온다(彌勒當來)는 믿음이 있다.

이런 믿음은 마치 예수의 재림과도 같은 코드로 시대를 거듭하며 피지배층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그러면서 동네 어귀에 있던 버려진 불상, 당집, 장승 심지어 돌무더기도 미륵으로 바뀌었다. 이런 미륵은 비록 권력에서 소외되었지만 이 세상의 기반인 보통사람들의 소망을 대변하며 지금도 시대마다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상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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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고대불교조각대전, 2015, 국립중앙박물관, 삽도 3.

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의 국적

"적송 사용·제작방식 봐도 한반도서 건너간 것 확실"

반가사유상은 인도 간다라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미륵과 관련된 도상은 우리나라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국보 83호와 일본 광륭사(廣隆寺)에 있는 두 반가사유상(사진 4)은 쌍둥이처럼 닮은 모습 때문에 양국 간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불상이다. 일본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하는 광륭사 반가사유상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느냐는 문제이다. 하지만 진실은 가릴 수 없는 법! 최근 연구 결과 나무의 재질, 제작방식 등을 보아 한반도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건너간 것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일본은 목불상을 만들 때 녹나무나 비자나무를 주로 이용하는데 이 불상은 적송으로 만들었다. 이 소나무는 옹이가 있고 송진이 많아 일본에서는 불상의 재료로 사용한 예가 없다. 제작 방법을 봐도 다른 일본의 반가사유상들은 머리나 몸통 등을 따로 만들어 조합하는 게 일반적인 비해 이 불상은 하나의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또, 속을 완전히 파낸 다음 바닥을 나무판으로 막은 형태 또한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작방법이다. 한마디 사족을 덧붙이자면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 것보다는 금속을 주조해서 만드는 것이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최형균(LH 총무고객처)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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