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대입 수능 날짜가 임박할 때면 거의 예외 없이 내 뇌리를 찾아드는 18년 전 <한국일보>의 '고종석 칼럼' <미친 사랑의 기도>라는 '단골 글 손님'이 있습니다. 자식의 합격을 간절히 기도하는 모정에 대한 쓴소리인데, 여북하면 저런 기도를 드리랴 싶은 어머니들을 떠올리면 내가 '글 죄'나 지은 양 좀 불안해지기도 하고, 묘한 스릴(?)도 느낍니다. 몇 구절 인용입니다. <나는 제 자식의 '시험운'을 위해 곡진하게 기도하는 '헌신적' 어머니들의 (신문)사진이 역겹다. 그들 가운데 자식이 애쓴 만큼만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자식에게 '덤의 운'이 따르기를 기원할 것이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의 끝 대목을 희미한 기억으로 찾아 덧붙입니다. '사람의 각자 운명은 농부가 밭을 갈듯이 스스로가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시험에 붙게 해주십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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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애쓴 만큼만…'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깨달아 '지킴(守)에 능(能)한'

그 '수능(守能)'

내면화로 굳어짐도

신앙이라면 신앙 아닐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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