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이병헌' '최치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알고 있는가?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한류스타라는 점이다. 언뜻 앞의 가수와 배우는 이해가 되지만, '최치원'은 이해할 수 없다 할 것이다. 필자는 최치원이 왜 최초의 한류스타인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먼저 한류(韓流)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중국의 한 언론에서 처음 사용되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한류는 한국의 문화가 다른 국가에서 인기리에 소비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1990년 초반 한국은 국가정책으로 문화 수출국을 지향했다, 그로 말미암아 중국의 경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1996년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었으며 그 결과 음악이나 음식, 패션, 핸드폰, 자동차, 디지털, 미용 등 여러 분야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중국 언론은 이런 현상을 한류라고 했다.

사실, 한류는 1999년 11월 9일 북경청년보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하였고, 그 후 중국 한어대사전에 등재되며 한국의 신문, 방송 등에서 사용되었다. 또한, 한류 외에도 '한풍(韓風)', '한조(韓潮)', '한열(韓熱) 등 다양한 단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최치원은 우리 역사상 파천황(破天荒)의 인물이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역사학자가 최치원을 문장의 종주로 여긴다. 최치원의 문장은 당시 당나라의 황제와 고관대작들뿐 아니라 학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최치원의 문장이 완성된 시기는 당나라의 장군 고시중(고병)의 휘하에서 군서를 담당하던 때로 추측된다. 4년 동안 최치원은 무려 만여 편의 군서를 써서 보냈는데 이는 단순히 계산해도 1460일 동안 하루에 무려 7편씩 군서를 지어 보낸 것이다. 특히 군서의 특성상 수신자가 황제나, 고관대작들이기에 군서의 문장과 필체는 정성이 깃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당나라 황제와 고관대작들에게 최치원의 새로운 형태의 문장과 필체는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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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한류란 한국의 문화가 다른 국가에서 인기리에 소비되는 것이다. 신라 출신 최치원의 문장과 필체는 신라의 문화, 즉 한국의 문화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최치원을 한류의 시초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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