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금지령에 바뀐 축제 풍경
플리마켓·체험부스 운영 등 신선

처음 대학에 와 가장 처음 한 경험은 '술'이다. 닭볶음탕과 생오이, 생당근을 한입씩 베어 물고 소주를 권하는 선배들은 그때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20살의 나는 그들이 어른 같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한잔이 두 잔이 되고, 선배들과 나는 수없는 술자리로 다져진 가히 술로 맺어진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이 관계는 축제를 지나면서 더 돈독해진다. 3일 동안 이어지는 축제 때는 과마다 주점을 운영하는데, 안주 재료와 술을 사와서 직접 요리도 하고 서빙도 하면서, 말 그대로 주점처럼 술을 팔았다. 대학생 시절에는 나도 주점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낮에는 다시 일어나 선배들과 그날 팔 안주 재료를 다듬는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또 밤이 되면 밀려드는 다른 학교 혹은 다른 과 학생들의 주문과 씨름하고, 또 때로는 호객행위를 해 가며 술을 팔았다.

그런데 이제 이런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지난 5월 교육부는 '대학교 축제 주점에서 술을 팔면 안 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의 대학에 보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대학생들이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점을 운영하는 것은 주세법 위반이라는 게 이유였다. 공문 이후 전국의 대학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주점은 예전과 다름없이 운영하지만, 술을 팔지 않고 안주만 파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경상대학교처럼 주점 자체를 없애고 그 공간에 '푸드트럭'이 들어선 곳도 있었다. 5월 이후 전국의 대학은 대체로 주점 대신 푸드트럭이나 총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체험 부스들이 늘어났다.

성신여대는 주점도 없애고, 연예인의 공연도 없앴다. 대신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부스와 형형색색의 에어배드(airbed) 등을 두고 친구들과 함께 수다도 떨고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잔디밭 로망'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판매하는 '플리마켓'과 목소리만으로 실력을 뽐내는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을 모티브로 해 성신여대 학생들이 가면을 쓰고 노래 경연을 펼치는 '시크릿 가왕'은 가수 공연 못지않은 학생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이처럼 연예인과 술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신선한 기획이 엿보인다. 학생들은 "연예인 공연이 없으니 일반인 출입도 적어 분위기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 술 없는 축제를 지향했지만, 여전히 '술판'인 학교도 많았다. 술을 밖에서 사 오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술을 사와 주점에서 마시면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학교 인근 편의점이나 마트 등은 술을 사러 드나드는 학생들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대학축제 주류 판매 금지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허울뿐인 규제가 학생들을 범법자 내지는 편법을 하도록 오히려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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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학축제가 술을 규제하자 주점을 대체하는 색다른 축제를 마련한 학교도 있는 반면, 여전히 학교에서 술을 마시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학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점차 술 없는 대학문화를 정착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대학생들은 연예인 공연, 주점 등 천편일률적이고 소비적인 축제 문화 대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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