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건물주·시공사 책임회피"
표준계약서 안써 산재처리 난망

"사람이 일을 하다 숨졌는데,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답니다. 참 답답합니다."

권혁철(53) 씨와 아들 준호(24) 씨는 지난달 29일부터 경남도청 앞에서 상복을 입고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 19일 창녕 한 주택 리모델링 공사현장에서 숨진 권순관(30) 씨의 아버지와 동생이다. 숨진 권 씨는 아내와 생후 4개월가량된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권 씨는 굴착기를 운전하며 리모델링 공사현장에서 벽철거 작업을 하다 무너진 지붕에 깔려 숨졌다. 유족들은 안전조치 미흡으로 붕괴사고가 났으나, 건물주와 시공사 대표 등이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권혁철 씨는 "사고가 난 지 45일이 지났는데 건물주와 시공사 등은 모두 자기 책임이 아니라 발뺌하고 있다. 애초 건물주와 시공사는 산업재해 처리를 약속했지만 장례를 치르고 나자 말이 없다"고 했다.

건물주는 "안타까운 유가족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시공사와 협의를 통해 유가족과 합의를 하려하는데, 시공사가 회피하며 법적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상황이어서 우리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시공사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 2일 경남도청 앞에서 지난 9월 창녕 한 주택 리모델링 공사 현장에서 숨진 권순관 씨의 가족이 상복을 입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우귀화 기자

창녕경찰서는 건물주와 시공사, 현장 반장 등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조만간 사건을 검찰에 넘길 계획이다. 고용노동부 창원고용지청도 산업안전관리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숨진 권 씨는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특수고용 노동자이고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산재 처리를 받기 어렵다.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에는 의무적으로 자동차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게 돼 있다. 또 1일 가동(노동)시간, 임금지급에 대한 사안 등을 보호받을 수 있다.

김근주 경남건설기계지부 조직부장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노조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집회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수고용 노동자는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니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 산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라며 "경남도가 표준임대차계약서 작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미리 추진했다면 숨진 권 씨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남도에 계속 요구하고 있으나 답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택배 기사, 화물차 기사, 수도검침원, 간병인 등 개인사업자나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근본적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조법 2조 개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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