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룡정서 느껴보는 선비 남명의 기상
합천출신 성리학 대가 조식 선생
'실천 중시·부패 비판'태도 배워
잘 몰랐던 설화·민담에 귀 쫑긋

역사·문화에 더해 자연까지 수려한 고장을 꼽는다면 합천을 경남에서 앞줄에 놓지 않을 수가 없다. 올해 역사 문화 탐방에서는 모두 세 차례 이처럼 멋진 합천을 찾았다. 6월 13일과 9월 29일에는 창원 명지여고와 양산 범어고가 걸음했고 6월 16일에는 통영중·통영여중·충렬여중 연합 동아리인 '통역사'(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가 함께했다. 이들 모두가 탐방한 곳은 삼가면 외토리의 용암서원·뇌룡정이고 학교별로 더 둘러본 장소는 합천댐물문화관과 해인사(명지여고), 영암사지와 해인사(범어고), 삼가장터삼일만세운동기념탑과 합천영상테마파크(통역사)였다.

◇넉넉하고 따뜻한 용암서원·뇌룡정

용암서원과 뇌룡정은 합천 삼가면 외토리에 있다. 경남을 대표하는 선비 남명 조식 선생이 태어난 자리다. 뇌룡정은 남명이 제자들을 모아 가르친 공간이고 용암서원은 남명 사후 제자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둘 다 양천강이 흐르는 들판에 남향으로 앉아 있다. 양쪽 둘러싼 산들이 야트막해서 해가 뜨면 늘 따사롭고 강물과 함께 나란히 이어지는 평지인 덕분에 찾을 때마다 넉넉함을 느낄 수 있다.

▲ 남명 조식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뇌룡정에서 양산 범어고 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용암서원에서는 햇살이 쏟아지는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남명 조식 도전 골든벨'을 한다. 알 듯 말 듯한 문제를 내면 학생들 궁금증과 호기심이 동하게 마련이다. 그런 다음 지금 시대 현실에 비추어 가며 문제 풀이를 진행하면 그에 대해 충족감을 줄 수 있다. 가난하지만 욕심 없고 곧았던 삶, 제자를 받아 가르치게 된 배경, 옳음과 실천을 중시하면서도 담백했던 사상, 당시 사회 상황과 남명이 맺었던 이런저런 인간 관계 등을 지루하지 않게 두루 일러주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많이 맞힌 몇몇에게 상품권을 안긴 다음 을묘사직소(1555년 임금이 내린 단성현감 자리를 거절하며 올린 상소문)를 새긴 빗돌을 잠깐 살핀다. 임금의 무능과 그 어머니(대비)의 사심과 벼슬아치들의 부패를 비판하는 거침없는 표현에서 남명의 기상을 함께 느껴보았다.

이어 뇌룡정으로 옮겨가 얘기를 나눈다. 탐방을 마치고 통역사 통영여중 노소정 학생이 소감을 썼다. "뇌룡정의 오른쪽과 왼쪽 기둥에 '시거이룡현(尸居而龍見)'과 '연묵이뢰성(淵默而雷聲)'이라 적혀 있는데 '불필요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때는 조용히 있다가 꼭 필요할 때 나타나 할 일만 하고 가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평소는 시체처럼 지내거나(尸居) 연못처럼 침묵하지만(淵默), 일이 있을 때는 용처럼 나타나(龍見) 벼락같이 소리쳐라(雷聲)는 것이다.

선생 사후 초야에 묻혀 지내던 제자들이 임진왜란을 당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떨쳐 일어난 배경에 이런 가르침이 있었다. 300년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1919년 삼일운동 때도 삼가 조그만 시골 장터에 3만이 넘게 모여 시위를 벌이는 바탕이 되었고 그 자취가 지금 삼가장터삼일만세운동기념탑으로 남아 있다.

▲ 학생들이 남명 조식 선생이 임금에게 올린 을묘사직소를 새긴 빗돌을 살펴보고 있다.

◇가야산 산신령한테 땅을 빌린 해인사

해인사에서는 장경판전 대문·대적광전 정면·학사대 전나무·국사단 현판 등 사진 찍기와 인상깊은 모습 하나를 골라 자세히 그리기, 그리고 궁금한 것을 찾아 질문 만들기를 미션으로 내었다. 대충으로라도 이 절간이 품은 아름다움과 특징을 살펴보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둘러본 다음 적당한 자리에 모여 미션 풀이를 한다. 팔만대장경을 모시는 장경판전이 가장 위에 있는 까닭, 학사대 전나무에 어린 고운 최치원의 전설, 대웅전에 동서남북 모두 다른 현판이 걸려 있는 사연 등을 풀어놓는다.

특히 국사단은 외래 신앙인 불교가 우리 고유 전통 신앙과 만나는 자리다. 주인은 가야산 산신령인 정견모주(正見母主)다.

최치원은 대가야 건국설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여기서 정견모주는 대가야 임금 뇌질주일과 가락국 임금 뇌질청예 형제를 낳은 어머니다. 불교는 그러니까 가야산 산신령한테 땅을 빌려서 해인사 산문을 열었다. 불교가 전통신앙을 내치거나 짓밟는 대신 품에 안고 공존하는 자리라 하겠다. 마지막으로는 학생들이 만들어온 질문으로 묻고 답하기를 하면서 한 걸음을 더 들어가본다. 물론 자세히 보고 꼼꼼한 질문을 한 친구에게는 상품권 한 장을 선물로 건넨다.

▲ 영암사지 서금당터 동쪽 귀부 앞에 서 있는 학생들.

◇영암사지·합천영상테마파크·합천댐물문화관

영암사지는 감탄스럽다. 학생들은 '망한 절터가 이렇게 멋질 수 있다니!' 하며 탄성을 내지른다.

둘러싼 배경 모산재도 씩씩하고 남아 있는 석재들 또한 밝고 환하다. 군데군데 석재들은 고개 숙여 살펴보면 거북·사자·연꽃 등등 조각된 모습들이 생생하고 선명하다. 석탑에서 금당으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돌다리는 2m가 넘는데도 한 덩어리 통돌로 되어 있다. 쌍사자석등의 사자 엉덩이는 매끄러운 촉감을 자랑하고 서금당 자리 동쪽 귀부의 거북이 꼬리는 날렵한 상승세를 보여준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재미있다. 여기서 찍은 영화와 드라마가 50편도 넘는다. 그만큼 세트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 볼거리가 넘쳐난다. 학생들한테 특히 인기는 60~80년대를 재현해 놓은 거리와 건물들이다. 옛날 교복을 빌려 입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 재미가 곱절이다. 합천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려고 만든 공간이 학생들에게는 한두 세대 앞선 사회가 어떠했는지 느껴보는 역사 학습장이 되었다.

▲ 영암사지 삼층석탑을 거쳐 쌍사자석등을 향해 돌다리를 오르는 학생들.

합천댐물문화관은 상쾌하다. 옥상에 올라 맞은편 수문이 있는 데까지 탁 트인 수면이 너르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기서 합천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하는 까닭이다. 물문화관은 또 시간을 내어 여기저기를 살펴보면 합천댐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쓰임새를 하는지도 바로 알려 준다. 시간대를 정해놓고 동영상도 보여주는데 단체로 들른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배려를 받았다.

앞서 소개한 통역사 노소정 학생은 소감에서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평소에도 가족끼리 합천을 와 보았지만 그 때는 별 지식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는 곳도 되게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설명을 들으면서 여러 곳을 다녀보니 확실히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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