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메일을 하나 받았다. 부산에 사는 한 독자가 병문안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 칼럼을 읽고 보낸 격려 메일이었다. 그는 "너무 도리를 따지는 병문안 문화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경조사 부조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말이 좋아 품앗이이지 그 의미가 변질됐다는 것이다.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선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선뜻 앞장서기 어려운 일이다. 경조사가 있을 때 주위에 알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먼저, 내가 그동안 품앗이한 게 얼마나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쉽지 않은 일에 앞장섰던, 한 결혼식과 한 장례식이 떠올랐다.

지난 7월 김해 서울이비인후과 정태기 원장이 딸의 결혼식을 치른 것을 며칠 후에야 알게 됐다. 혼사를 앞두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 병원 직원들조차 결혼식 장소와 시간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신랑신부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만 초대해 치른 결혼식이었다고. 정 원장은 지역사회에서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망설임 없이 배제한 그 뜻이 존경스러웠다.

9월 말 한마음창원병원 하충식 이사장이 빙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고인의 뜻에 따라 조화나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고 차분하게 간소하게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다. 신문에 부고도 싣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장례식장에는 조화가 끝없이 늘어섰을 것이다.

한마음창원병원 명예행정원장이었던 고인은 "사업하는 사람이 경조사를 알리는 것은 주위에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전에 강조하셨다고 한다. 고인과는 일면식도 없고, 그가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 그 모습에 나는 빈소에서 그분의 영정 앞에 진심으로 머리 숙이고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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