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 서울서 발생해야 언론서 관심
지방푸대접 여성운동에서는 사라져야

아침에 배달된 신문 머리기사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비웃는 솜방망이 처벌이나 제재를 다루었다. 서울시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남성이 전처를 살해한 사건에서 끌어온 기사다. 이 사건보다 이틀 앞서 부산에서 일가족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건이 비슷한 때에 일어났고 여성폭력 피해 범죄로 짐작된다는 점도 닮았지만, '중앙' 언론의 대접을 받는 사건은 하나뿐이다. 오히려 '부산 사건'은 피해자가 무려 4명이었고 아마도 '데이트 폭력' 중 가장 끔찍한 범죄에 들 것이다. 사건 직후 부산성폭력상담소 대표는 언론사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지만, 거기에 전국 미디어를 표방하는 '서울 언론'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서울 언론에서는 두 사건을 각각 '강서 주차장 살인'과 '부산 일가족 살해'라고 부른다. 부산은 서울 일개 구의 주차장과 동급의 처지인 것이다. 서울 언론의 지역 홀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지적하기조차 새삼스럽지만, 여성문제를 서울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은 언론만이 아니며 당사자들도 포함된다. 여성운동 진영에서도 '서울 사건'을 대접하고 '부산 사건'을 무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전력이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운동가들도 그렇게 부르거나, 아니 그들이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다. 잔인한 여성혐오범죄의 효시로 취급되는 이 사건은 수많은 여성의 분노를 일으켜 '미투 운동'의 격랑을 낳게 한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부산역이나 창원역 살인사건이라면 한국사회운동사를 할애할 만한 일대 사건으로 격상될 수 있을까.

이 사건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이라는 지명의 상징성이 과도하게 보태어지면서 사건의 잔혹함이 더욱 부각되고 이후 여성운동에 미친 영향력도 극대화된 듯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혐오범죄가 일어날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강남역' 이름에 흥분하는 사람들은, 중심이 아닌 마이너, 보편이 아닌 특수, 즉 지방 소도시나 시골에서는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서울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범죄의 시작도 아니다. 그보다 몇 년 앞서 창원 무학산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사내의 성폭력을 피하려다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다. 불특정한 여성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힌 남자가 저지른 범행이 여성혐오범죄라면 이 범죄의 흉악성은 무학산 사건이 강남역 사건보다 먼저 보여주었다. 사건의 진상이 늦게 밝혀지긴 했지만, 무학산 사건은 아는 이조차 드물다.

무학산과 강남역의 격차가 드러내는 지방 푸대접에 여성운동가들이 가세한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적어도 여성운동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남성-여성의 기울어진 관계는 서울-지방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서울의 여성운동가들은 작금의 시국이 여성운동이 폭발하고 여성들이 각성하는 시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이나 수도권이 대한민국 여성운동을 주도하거나 상징하는 것은 아니며, 여성운동의 양상은 지역이나 조직에 따라 편차가 크고 다채롭다. 가령, 설립 20년이 넘은 창원의 한 여성단체는 여성폭력 반대 캠페인을 이렇게 한다. "성폭력 예방 수칙: 1. 집에서는 혼자 있더라도 옷을 갖추어 입으라. 2. 낯선 이의 집을 방문할 때는 누군가와 동행하라." 피해자 탓으로 돌린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경찰에서 내놓는 성폭력 예방 수칙과 다를 바 없는 것을 복창하는 여성단체가 나오는 것은, 남자들 목소리가 매우 큰 이 지역의 특성 탓인지는 모르겠다. 차이와 다름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여성운동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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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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