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와 독립출판물의 만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한 주택가에 '페이지31'이라는 카페가 있다. 이곳은 커피와 함께 책을 전시·판매한다. 카페와 책의 만남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다. 단순한 책이 아니다. '독립출판물'이다. 페이지31은 독립출판물을 카페에 전시하고 구입을 희망하는 손님에게 판매도 한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주봉승(35)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10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픈한 카페

지난 11일 오후 페이지31이 있다는 주택가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카페를 찾지 못했다.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물었다. 시민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위치를 설명했다. 감사 인사를 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 골목을 지나 'P.31'이라 적힌 간판 앞에 도착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 향이 코를 자극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노트북을 보고 책을 읽고 있었다. 주 대표에게 인사를 한 후 인터뷰를 시작했다. 첫 질문으로 학창시절부터 페이지31을 오픈하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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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봉승 페이지31 대표. / 박성훈 기자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군대 대신 병역특례로 한 산업체에서 근무했습니다. 한 10년 정도 회사 생활을 했어요. 틈틈이 사진을 찍으러 다녔습니다. 사진을 찍고 항상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죠. 많은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카페를 해보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다니던 회사가 커져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되는 상황이 됐어요. 집을 옮길 상황도 안 됐고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더 커졌죠. 회사를 그만둔 후 페이지31을 오픈했습니다."

카페는 지난 2014년 7월에 문을 열었다. 주 대표는 무엇보다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모티브로 삼았다. 단순히 음료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취미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흔한 카페는 싫었어요. 손님이 와서 커피를 마시고 그냥 가는 것은 재미가 없잖아요. 물론 그게 가장 기본이고 카페의 본질이긴 합니다만 다른 무엇인가를 덧입히고 싶었어요. 생각한 게 바로 '모임'이었죠. 인테리어도 거기에 포인트를 줬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테이블마다 독립된 형태를 띠고 있죠.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활동을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죠."

독립출판물

지난 2015년 7월 송국화 씨가 주 대표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그 대상은 독립출판물이었다. 주 대표는 고민 끝에 송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모임에 중점을 두긴 했지만 다른 카페와 비교해서 특별하게 차이는 없었어요. 그러다 당시 방송작가였던 송 씨로부터 제안이 왔죠. 쉽진 않겠지만 잘만 하면 페이지31에 새로운 색을 입힐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전반적인 운영과 음료를 맡았고 송 씨는 독립출판물을 전시하고 판매를 담당하게 됐죠. 보통 작가들이 독립출판물을 낸 후 개인 SNS에 올리거든요. 송 씨는 그중에서 괜찮은 책들을 골라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거죠. 처음에는 저희가 연락을 해서 책을 받아왔는데요. 점점 페이지31의 이름이 알려졌고 지금은 먼저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카페 왼편에 있는 책장에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일반적인 책부터 만화책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그중 포장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주 대표는 그 책들이 독립출판물이라고 했다. 독립출판물. 대충은 그 뜻이 유추가 됐지만 정확한 개념이 필요했다.

"독립출판물이란 기존의 출판사를 통해 책이 대량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독립적이고 개인적으로 출판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즉 글쓴이가 기획부터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맡는 거죠. 현재는 이 시장도 커지면서 독립출판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출판사도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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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31 내부 전경. / 박성훈 기자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만 쓴다면 누구나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인은 다른 분야다. 전문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감각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책을 볼 때 가장 먼저 표지를 마주한다. 그 표지에 따라 책의 '첫 이미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데 일반인이 다루기에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처럼 처음 독립출판물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책 표지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 궁금증을 주 대표에게 물어봤다.

"제 경험상 독립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작가가 본업이 아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일을 하다가 '나도 한 번 책을 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죠. 아무래도 디자인 계통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독립출판을 많이 시도하더라고요. 물론 이런 계통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지인에게 부탁하거나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부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각자의 개성이 담겨 있죠."

앞서 말했듯이 독립출판물은 모든 과정에 드는 비용을 작가의 자비로 해결한다. 책을 소량으로 찍는다 할지라도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 터이다. 그럼에도 독립출판물을 내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아무래도 '자기만족'에 있지 않을까요? 보통 사람들의 기준에서 책을 출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해서 독립출판이라 할지라도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낸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두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의 한 Page '페이지31'

다시 카페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처음 카페명을 접했을 때 '페이지31'로 이름 지은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래도 책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러나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데요. 사실 큰 뜻은 없어요. 보통 '내 인생의 한 페이지…'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그것처럼 페이지31에서 '페이지'는 이 카페가 내 인생의 한 페이지라는 뜻이고 '31'이란 숫자는 제가 서른한 살 때 카페를 오픈해서 붙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뜻으로 지었는데 독립출판물과 협업을 하면서 그 의미가 커진 거죠. 지나고 보니 저도 신기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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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31 내부에 전시된 책. / 박성훈 기자

주 대표가 카페를 운영한 지도 4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페이지31을 찾아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좋았던 기억도 있을 것이고 슬펐던 기억도 있을 터. 우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카페를 운영하려면 매출은 기본이고 재고, 시설물, 정부 정책 등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죠. 또 위치, 홍보 등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내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으로 위안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주 대표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인터뷰 초반에 페이지31을 단순한 카페가 아닌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중점으로 만들었다고 말씀드렸었죠? 해서 '의도했던 공간에 의도했던 분들이 와서 의도했던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통기타 모임과 북콘서트, 프리마켓 등이 열렸습니다. 아 그리고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손님이 커피를 맛보고는 '너무 맛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도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모든 게 서투를 때였는데 그 칭찬으로 가게를 운영해 나갈 용기를 얻었죠."

책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모여 페이지31에서 정기적인 독서모임을 갖고 있다. 모임에서 '책 기증', '독서토론' 등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모임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시더라고요. 올해는 드로잉 클래스, 작가와 만나는 북콘서트 등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계속해서 생각나는 카페

인터뷰는 끝을 향하고 있었다. 카페를 운영한 시간보다 운영해 나갈 시간이 더 많이 남은 주 대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주 대표는 목표와 함께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이 카페를 계속해서 하고 싶어요. 지금은 세 들어 살고 있는데요. 언젠가는 월세 걱정 없이 가게를 운영해보고 싶어요. 임대료가 전체 수익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는 아니에요. 사실 임대료도 문제지만 세 들어 산다는 게 심적으로 부담이죠. 공연이나 전시회를 하고 싶어도 허락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페이지31이 고객들에게 어떤 카페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물었다. 고민을 하던 주 대표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계속해서 생각나는 카페였으면 좋겠어요. 다시 찾고 싶지 않은 카페로 기억된다면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모든 건 제 노력 여하에 달렸겠죠?"

인터뷰 도중에도 손님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주 대표는 연신 밖을 살피면서도 질문에는 최선을 다해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요즘 빔프로젝트, 스피커 등 다양한 물품들을 계속해서 추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가 좋아서 구매한 것들이지만 카페에서 모임 하는 분들에게 유용하게 쓰이더라고요. 빔프로젝트는 독서모임에서 책 소개나 토론을 할 때, 스피커는 기타 모임에서 활용하고 있죠. 이런 공간을 좋아해 줄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오셔서 저와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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