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고찰한 '불안의 서'전
다양한 표현·시각 돋보여
2016년에 이은 신진작가전
눈길·마음 붙든 작품 신선

경남도립미술관이 궁금하다. 군화 한 짝(최수환 작 '행군')이 미술관 창 밖을 휘젓는다. 또 미술관에 들어서면 로비 공중에 커다란 비닐(비비안 루보 작 '바람에 의해 사라지는 것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펄럭댄다. 갑자기 들리는 파도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지 가늠이 안 된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압도된다.

◇불안의 출발은 어디일까 = 경남도립미술관이 지난달 6일 네 전시를 동시에 개막했다. '불안의 서', 'N아티스트2018-새로운 담지자', '마당:놀_이', '싱글채널비디오-김송미'다.

▲ 경남도립미술관 창밖에 군화를 내건 최수환 작 '행군'과 앞마당에 재활용 팔레트를 쌓아놓은 국형걸 작 '숨바꼭질'이 눈길을 끈다. 아래는 왼쪽부터 장민승·기슬기·임창민 작가의 작품./이미지 기자·경남도립미술관

먼저 '불안의 서'가 미술관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진다.

미술관 측은 이 시대를 아우르는 정서인 '불안'을 진단하고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불안은 공포와 다르다. 공포가 인과적이고 경험적이라면 불안은 더 근본적이다. 그래서 단순한 심리현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장민승 작가의 작품.

1전시실 안쪽, 파도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이따금 부는 것 같다. 미술관 안내원의 작은 손전등에 의지해 들어간 칠흑 같은 전시장에서 마주한 건 어떤 한 여자다. 장민승 작가의 '보이스리스_검은 나무여'. 어두운 화면이 점차 밝아지더니 손가락이 보인다. 서서히 드러나는 얼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이용해 말을 한다. 아주 절제한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숨이 턱 막히고 소름이 돋는다. 작가는 2014년 4월 16일 무수한 생명이 바다에 수장됐던 그날을 잊지 않으려고 슬픔을 공감하려 애쓴다.

그렇게 20여 분 동안 어두운 전시장에 있으니 안의 공간이 눈에 익는다. 컴컴한 곳에 들어가 봐야 보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대못이 촘촘히 박힌 스티로폼 위에 두 발을 올린 기슬기 작가의 '모래를 씹는 순간 01'은 직접적으로 불안을 말하고, 두 공간을 교묘하게 배치해 평온한 풍경을 만든 임창민 작가의 '시간 프레임 속으로' 연작은 태풍에 소리를 지우고 파도에 굉음을 사라지게 하면서 불안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묻는다.

▲ 기슬기 작가의 작품.

이번 '불안의 서' 전시에서 개인적 경험에서 사회적 상황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사유한 불안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기슬기, 박재영, 배영환, 이수경, 이세경, 엄상섭, 임창민, 장민승, 장서영, 탈루 엘엔(Tallur L. N), 비비안 루보(Vivien ROUBAUD) 등 작가가 참여했다.

◇작품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 3층 전시실에서는 신진작가 지원전 'N아티스트2018-새로운 담지자'가 열리고 있다. 감성빈, 이정희, 정호, 최수환, 한소현 등 현장에서 10년 넘게 활동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새롭게 큐레이팅했다. 그래서 한 작품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힘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정희 작가는 SNS 소통을 거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면서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움직이지 마세요', 이산가족의 '상봉권 침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피지 못한 꽃'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 '좋아요'를 부르는 행동이 아니기에 작가의 진정성이 돋보인다.

▲ 임창민 작가의 작품.

최수환 작가는 도립미술관 4층 테라스 밖으로 자신의 군화가 움직이게 설치했고 야외 전시장으로 나가는 통로에 건축 모형을 만들었다. 경남도립미술관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작가가 2008년 시작한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감성빈 작가의 조각상과 정호 작가가 세밀하게 그린 손, 한소현 작가가 내놓은 사적인 경험과 기억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위안을 받는다.

한편 미술관 1층 영상전시실에서 '생활 다큐'라 불리는 김송미 감독의 <낯설게 하기> 시리즈 48편이 상영되고 있다. 또 미술관 앞마당에는 국형걸 작가가 재활용 팔레트로 만든 '숨바꼭질'이 놓여 있다. 미술관 측은 이 공간을 '마당:놀_이'라고 이름 지었다. 전시는 12월 5일까지. 단 김송미 작가의 싱글채널비디오는 11월 4일까지 상영. 문의 055-254-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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