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집중하면 나는 자유롭다
그 어떤 바람·두려움 없이
성공·미래에 관한 걱정 접고
순간의 '행복'몰입하면 돼

누군가 법륜 스님에게 질문하였다. 스님은 무엇을 하시고 싶은지요?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이 세상에 무엇을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없다. 그냥 되는대로 사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가치가 없냐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치조차 없다. 그래서 내가 자살을 안 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누비며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 스님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님이 저 말을 하는 순간 그게 무슨 뜻인지 감이 올 것만 같았다. 스님은 마치 길가에 난 풀처럼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좋고, 밥을 먹으면 밥을 먹어서 좋다"고 하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하고, 못 하면 안 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뭘 하려고 하지도 않고, 굳이 어떤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더 살려고 허우적대면 더 깊이 물에 빠져든다. 그렇다고 일부러 죽을 필요도 없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물에 뜬다. 그러면 살아남는다. 우리는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어떤 움직임이 필요할 때,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잘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대학교 때 한 예쁜 후배가 나에게 리포트 하나를 부탁했다.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고, 내 숙제도 안 하는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후배가 부탁하는 일을 내 성격에 거절도 못 할 거고, 어차피 다음 주까지 해야 하니깐 내 걱정과는 상관없이 주말엔 어떻게든 리포트가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모든 상황이 끝나 있을 것이다. 김장훈 노래 중에 '그대로 있어주면 돼'를 우연히 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자리만 지키고 있기만 해도 많은 일이 해결되기도 한다. 굳이 내가 애써 뭘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

나는 스님이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처럼 어떤 바람도, 두려움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 두 가지만 없다면 우리가 굳이 일부러 뭔가를 할 필요가 있을까? 바람과 두려움이 없으면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바람과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현재의 몰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에게 어떤 움직임이 요구되지 않는 것이고, 생각도 요구되지 않는 상태이다. 우리는 미래를 생각할 때 생각을 하고, 걱정한다.

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시간이 남았다. 약속 장소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저녁이라 점점 조명이 밝아지고 있었다. 이때가 가장 도시가 아름다운 것 같다. 그때 나는 그 순간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은데, 내게 있었던 아픔들은 지금 이 순간에는 없다. 내가 할 걱정들도 잠시 접어두었다. 그 아픈 기억과 미래의 걱정들이 진짜 존재하기는 할까? 지금 이 순간엔 과거와 미래가 그저 희미한 다른 세계의 기억들인 것 같았다. 과거나 미래의 관념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힘이 있을까?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지금 여기에, 이 바람과 소리와 빛과 함께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나의 성공, 미래 같은 것들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내 안에 분명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나는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 내 안에 분리된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나는 어떤 바람이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할 뿐이다.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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