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농 아들의 뚝심

이성환(57) 김해농산물종합유통센터 사장은 지난 1985년 입사 이후 33년간 '농협 맨'으로 살아오고 있다. 젊은 시절 한 번쯤 다른 곳에 한눈팔 법도 하지만, 그는 '오직 이 한 길'만을 품어왔다. 농협 말단 직원에서 김해농산물종합유통센터 사장까지 오른 그의 이야길 들어봤다.

센터 역할 '지역 농산물 제값 받고 판매'

이성환 사장은 경남농협 경제지주 부본부장으로 있다가 지난 1월 김해농산물종합유통센터 최고 책임자로 취임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진심을 판다, 안심을 산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Q. '김해농산물종합유통센터'가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낯설 것 같은데, 어떠한 곳인지 설명 좀 해주십시오.

"농협하나로유통이 운영 주체로 지난 2005년 11월 개장했습니다. 가장 큰 역할은 경남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지역 농산물이 전체 취급량 가운데 90% 가까이 됩니다. 또한 다른 유통매장과 달리 100% 국내 농산물만 취급합니다. 저희는 바나나와 같은 수입 과일은 절대 취급하지 않는 거죠. 즉, 국내 농산물, 특히 경남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것을 직접 팔아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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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환 김해농산물종합유통센터 사장. / 김구연 기자

Q. 유통센터 자료를 살펴보니, 사업이 크게 3가지로 나뉘던데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인가요?

"소매·식자재·급식 사업입니다. 소매사업은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농산물·생필품 등을 파는 하나로마트로 이해하면 됩니다. 식자재사업은 주로 자영업·요식업 사장님들을 대상으로 식자재를 대량 공급하는 것입니다. 급식사업은 주력으로 삼는 부분인데요, 유통센터에서 김해지역 115개 학교 가운데 109개 학교에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즉 김해 농가가 생산한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1년 내내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인 셈이죠. 저희 급식사업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견학 오는 분도 많습니다."

김해농산물종합유통센터는 김해관광유통단지(신문동) 내에 자리하고 있다. 평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찾았을 때 주차 걱정 없을 정도로 매우 한산했다.

Q. 일반 소비자들이 이용하기에는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하루 방문객이 5000명 이상 돼야 하는데, 현재 2800여 명 수준입니다. 또한 타 유통매장보다 마진을 좀 더 낮게 잡고 있습니다. 경영이 빠듯할 수밖에 없죠. 지난 2011년까지 계속 적자를 이어왔습니다. 이후 각종 경비 요인들을 줄이면서 그나마 흑자로 전환된 정도입니다. 하지만 애초 취지대로 농민들은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명감을 느낍니다. 농협이라는 조직의 목적과 부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아버지, 저 농협 합격했어요"

이성환 사장은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1977년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에 입학했고, 1985년 농협에 입사했다. 지금 농협에 쏟아붓는 열정은 어려웠던 옛 시절에서 비롯된다. 그는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면서 촉촉해진 눈을 감추지 못했다.

Q. 어릴 적에는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요?

"2남 1녀 중 차남으로, '빈농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중학교 때는 제대로 공부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중1 때 돌아가셔서, 아버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마음에 '좋은데 취직해서 효도하자'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중3 때 악착같이 공부해서 마산상고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도시락 쌀 형편이 못돼 점심때 혼자 수도꼭지 물만 먹고는 그랬죠. 보통 상고 들어가면 은행을 생각하죠. 실제로 저한테 추천도 들어왔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농촌·농업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잘 알았기에, 농협 입사를 꿈꿨습니다. 고3 2학기 때 창원공단 내 제일정밀공업주식회사 경리부에 들어갔고, 이후 군대를 마치고 지역농협인 마산농협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1985년 농협중앙회 공채 시험을 쳐서 말단인 서기보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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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환 사장은 유통센터 직원들과 함께 환경정화활동을 하는 등 농협의 사회적 역할도 잊지 않고 있다. /이성환 제공

Q. 원하던 곳에 입사했지만 직장 생활은 당장 현실일 텐데요, 농협 조직 일이 본인 적성에 잘 맞던가요?

"입사 초반 업무량이 너무 많아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환경이 그렇다 보니 농민들 마음을 잘 알고, 도움 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좀 더 높은 직책에 대한 마음도 컸습니다. 4급 승진을 위해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보통 5번, 많게는 7번 이상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독을 품고 공부했습니다. 아버님을 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한 정성 덕분이었는지, 2번 만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께 전화로 그 소식을 알려드렸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제가 같은 나이 직원들보다 5년 늦게 입사했지만, 오히려 빨리 승진할 수 있었던 거죠."

Q. 고향 함안에서 근무했던 적도 있나요?

"1994~1995년 과장으로 함안에서 근무했습니다. 아버님은 동네 분들에게 '우리 아들이 농협 과장'이라며 자랑하셨습니다. 술 한잔하시고는 저한테 '고맙다'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이후 2014~2016년 다시 고향에서 함안지부장으로 일했습니다. 가난한 농사꾼 아들이 승진해서 고향 농협 최고 기관장을 맡은 것에 대해 마을 분들이 많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아버님은 2001년 돌아가셔서, 이때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아버님이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저는 고향을 위해 뭔가 하나를 반드시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당시 함안에는 제대로 된 농산물처리장이 없었는데, 결국 농림부 사업 승인을 받아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건립을 확정 짓고 나왔습니다. 센터가 곧 준공될 예정인데, 현 함안군지부장이 감사패를 주겠다고 하더군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전까지 함안은 기업 3000여 개를 두다 보니, 농업을 뒷전으로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군수님, 지역 분들을 열정적으로 만나며 그러한 분위기를 많이 바꿀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꿈 '함안 고향 땅 이장'

이성환 사장은 농협에 근무하며 주경야독으로 대학·대학원에서 산업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는 1986년 결혼해 현재 1남 1녀를 두고 있다. 창원에서 지내다 지난 2004년부터 김해 율하에 살고 있다. 하지만 함안 고향 흙과 함께하고 있기도 하다.

Q.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요?

"제 취미가 농사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논 600평을 물려주셨습니다. 거기에 농토를 조금 더 사서는 주말농장을 가꾸고 있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고추·깻잎·콩 등을 열심히 키워서 수확물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눕니다. 농촌은 제가 태어난 곳이자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기도 합니다. 흙냄새 맡으며 땀 흘리는 게 너무 좋습니다. 저의 최고 낙원은 농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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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환 사장은 현재 김해에 살고 있지만, 고향 함안 땅에서 주말농장을 가꾸고 있다. 그는 농사짓기가 취미라고 말한다. /이성환 제공

김해농산물종합유통센터 사장으로 주어진 임기는 애초 1년이었다.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말 정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Q. 유통센터 사장으로서 제대로 일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경남농협 경제부본부장으로 있다가 소비자경제를 경험하고 싶어 이쪽으로 왔습니다. 취임 때 저는 직원들에게 '1년을 2~3년같이 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센터 입구에 바람개비 100개를 설치했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우리 직원들이 돌리겠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지난 4월 하나로마트 경남도청점을 개점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 우리 센터를 체류형 매장으로 정착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로컬푸드매장을 올해 안에 반드시 개설할 계획입니다."

Q. 농협에 대한 소회 한마디 안 들어볼 수 없겠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농협이 진정으로 농민을 위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예'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병원 현 농협중앙회장님 취임 이후 우리 조직이 크게 달라졌다고 봅니다. 이제는 농협이 진정으로 농민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민이 어려운 현장에 반드시 농협 직원이 먼저 가 있는 분위기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Q. 정년과 동시에 농협을 완전히 떠나게 되는 건가요?

"농협이 저에게 자회사 같은 곳에서 일할 기회를 다시 준다면, 저의 열정을 마지막으로 쏟아붓고픈 마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Q. 앞으로 세우고 있는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농업이 천대받지 않는 나라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농업 없이는 선진국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제가 살던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이장 역할이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고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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