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덕분에 큰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죠

지난달 14일 창원에서 열린 52회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폐막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8월 31일부터 16일간 진행한 대회에는 91개국 4255명의 선수단·임원이 참가해 60개 세부종목에서 708개의 메달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이번 대회에 부여된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권(쿼터) 60장도 모두 주인을 찾아갔다. 이번 대회는 어느 대회보다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뛰어난 시설 덕에 세계신기록이 쏟아졌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보단 제 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대회에 참여하고자 몇 해 전부터 준비해온 이부터 사격 애정을 듬뿍 키운 이까지. 언제 어디서든 고개만 돌리면 환하게 웃고 있었던 이들을 우리는 '자원봉사자'라 불렀다. 52회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의 숨은 보석, 아니 진짜 주인이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되돌아봤다.

사림동 주민 윤미애 씨

윤미애(61·사진 가운데) 씨에게 창원국제사격장은 '내 집' 같은 곳이었다. 사격장이 위치한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서 20년 넘게 사는 그는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었다. 봄이면 벚꽃이 활짝 핀 사격장 옆 운동장을 걸었고 밤이면 운동 삼아 사격장을 오르내렸다. 약수를 뜨러 정병산 길목인 이곳을 찾기도 수백 번. 친근한 그 장소에서 세계적인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누구보다 반가웠고 뿌듯했던 그다. 미애 씨는 그 반가움을 도전과 참여로 바꿨다. 캐나다로 시집간 딸을 위해, 손녀와 원활히 소통하고자 시작한 영어 공부 목표를 사격대회 참여로 확대했다. 2년가량 이어온 노력은 곧 성과로 나타났다. 면접을 거쳐 이번 대회 자원봉사자로 당당히 뽑힌 것. 미애 씨는 대회 기간 조직위 문화행사팀 일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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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 문화행사팀 일원으로 활동한 윤미애(가운데) 씨와 팀원들. / 김구연 기자

"지역 주민으로서 뜻깊은 대회에 함께했다는 게 얼마나 영광인지 몰라요. 올해 회갑을 맞았는데 대회장에 가서 보니 자원봉사자 중 제가 거의 제일 선임이더라고요. 살짝 부담이 되면서도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기분이 들었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은 이번 대회 소중함을 더 키웠고요."

미애 씨가 속한 문화행사팀은 야외 공연과 포토 키오스크·페이스페인팅 부스 운영 등을 담당했다. 공연장 정비와 사진 촬영 안내, 페이스페이팅 스티커 배포·부착 등이 주요 업무. 맏언니 미애 씨를 포함한 6명의 팀원은 오전 9시~오후 5시 서로 도와가며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많을 때는 하루 200~300명이 부스를 찾았어요. 그럼에도 더위와의 싸움 외에 딱히 힘든 점은 없었어요. 세계 각국 사람과 대면하며 소통할 수 있다 보니 오히려 즐거웠죠.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를 더 자주 써먹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라니까요."

문화행사팀이 담당하는 부스에서 단연 인기를 끄는 건 이번 대회 마스코트인 에이미(Aimy) 스티커였다. 미애 씨 말에 따르면 특히 외국인 선수단에 인기가 좋았다고. 사격장과 진해 벚꽃 등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 부스도 문전성시였다. 끊이지 않는 손님(?)에 자칫 지칠 만도 하건만 미애 씨와 팀원들은 늘 환한 웃음으로 이들을 맞았다. 그 과정에서 미애 씨는 평생 간직할 이야깃거리도 여럿 만들었다.

"대회 3일 차였나, 비가 내리던 날이었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단 중 한 명에게 아쉬움을 담아 '비가 온다'며 말을 걸었더니 그분이 '한국 날씨 정말 좋다. 우리나라는 지금 40도쯤 됐을 것'이라며 화답하더라고요. 사소하지만 즐거운 경험이었죠."

미애 씨는 앞으로도 사격 애정을 지켜갈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미애 씨는 바람 한 가지를 밝혔다.

"대회 기간 사람 구경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가곤 했어요. 다양한 인종이 어울렸던 그 공간, 정말 즐거웠죠. 앞으로 이 같은 대회가 우리 창원에서 많이 열렸으면 하네요."

종합안내소 팀원들

이곳은 낯선 땅을 방문한 이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처음 들른 대회장·행사장에서 길을 잃었을 때 혹은 뭔가가 궁금할 때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곳. 나도 모르게 발길과 눈길이 향하는 종합안내소 이야기다.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도 종합안내소 역할은 컸다. 조직위는 대회장 입구와 홍보관 옆에 종합안내소를 배치, 대회장을 찾은 선수단·시민이 손쉽게 묻고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종합안내소에서는 총 10명이 봉사했다. 주차장과 맞닿은 대회장 입구에 6명, 대회장 안 창원시 홍보관 옆에 4명이 있었다. 이들이 맡은 일은 말 그대로 '종합'이었다. 경기 일정과 경기장을 안내하는 기본적인 일부터 분실물을 보관, 되찾아주는 일을 했다. 외국 선수가 숙소까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콜택시를 예약하고 관리하는 일도 이들 몫이었다. 선수단·시민과의 일상 소통은 기본. 오전 8시~오후 6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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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 종합안내소 자원봉사자들. / 김구연 기자

이들은 "종합안내소가 그 대회장이나 행사장 첫인상"이라며 "시민뿐 아니라 외국 선수단도 수시로 들르는 장소가 종합안내소다. 우리 때문에 이번 대회 이미지가 나빠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난 대회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자 기울인 노력도 남다르다. 창원 월드컵사격대회 때도 봉사자로 참여하며 기반을 다지거나 학부모 봉사단체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오기도 했다. 자녀를 키우면서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하기도. 덕분에 종합안내소에는 20~60대 다양한 연령이 어울렸다.

물론 일을 하면서 마냥 좋은 상황만 있는 건 아니다. 콜택시 한 대씩을 요청했던 두 외국인이 알게 모르게 한 차로 대회장을 떠나면서 난감했던 적도 있다. 뒷수습을 하고 핀잔을 듣는 일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힘듦보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한 자원봉사자는 "몇몇 착오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선수가 친근하게 자원봉사자를 대한다"며 "오히려 북한 선수들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 참여한 의의도 밝혔다. 이들은 "세계가 주목하는 대회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이런 큰 대회가 창원에서 더 자주 열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봉사가 안기는 의미도 되새겼다. '내가 베푼 도움이 언젠가 내게 돌아올 수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봉사를 저절로 알게 됐다', '내가 맡은 일에 정성을 쏟는 거 자체가 봉사'라고 말이다.

대회 마지막 날까지 부스에서 환한 미소로 시민·선수단을 맞이한, 이들 활약 덕에 이번 대회는 더욱 빛났다.

도로 위 숨은 주역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다 보니, 미처 그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있다. 부쩍 짧아진 봄과 가을, 붙어 있기만 해도 좋은 신혼생활, 점점 더 멀어져가는 청춘이 한 예라면 예.

범위를 좁혀, 행사장에서도 이 같은 존재가 곳곳에 있다. 차를 탄 사람 처지에서는 기껏해야 2~3초 이들 곁에 머물지만 그 짧은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내가 필요한 사람은 없을까 하며 온종일 예의주시하는 사람들. 주차관리 요원이다.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온종일 아스팔트 위에서 땡볕·매연과 씨름하는 이들 덕분에 이번 대회는 더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마산동부지회(회장 서만호)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대회 기간 마산동부지회를 비롯한 창원 내 5개(창원중부·창원서부·진해·마산동부·마산중부) 모범운전자회는 대회장과 임시주차장 주차관리·차량 회차 등에 힘썼다. 창원실내체육관에서 개회식이 열렸던 지난 9월 1일에는 5개 지회가 총출동하기도. 이후 이들 지회는 길게는 5일씩, 짧게는 이틀씩 대회장에서 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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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만호 마산동부모범운전자회 회장. / 김구연 기자

서만호(63) 회장은 "보통 창원이면 창원, 마산이면 마산 등 행사가 열리는 지역에 따라 그 지역 지회만 지원을 나가는 편"이라며 "하지만 국화축제라든지, 진해군항제라든지 규모가 큰 행사에는 모든 지회가 힘을 합치고 있다.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축제인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마산동부지회에는 지난 9월 11·12일 총 16명의 모범운전자를 대회장에 파견했다. 이들은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주차장 길목 곳곳에서 운전자를 도왔다. 방문객에게 옳은 길을 안내하고 사고 예방에 앞장서는 것도 이들 몫. 서 회장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대회장에 머물렀다"며 "대회장을 오가는 외국인 선수단이나 시민이 '고생한다'며 말 한마디라도 건네면 금방 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물론 마냥 친절하고 협조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회 특성상 관람객 차량은 주경기장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음에도 회차를 거부하는 등 고집을 피우는 이가 가끔 있었다. 서 회장은 "물론 대부분 시민이 협조적이었다"면서 "그들 덕분에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산동부지회는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NC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10여 명의 모범운전자를 지원한다. 고령자가 점점 늘어가는 걱정을 안고 있지만 당장은 맡은 일에 정성을 쏟고 싶다는 게 서 회장의 말. 일상에서 혹은 특별한 날이면 서슴없이 도로에 서는 이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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