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까지 경남 땅이었던 가덕도에 있는 일제의 흔적들을 기록해봅니다.

가덕도는 통일신라 당나라와 무역을 하던 주요항구였고, 조선시대에는 웅천군, 1908년 창원군, 1910년에는 마산부, 1914년에는 다시 창원군으로 편입되었고, 1980년에는 창원시 승격으로 의창군에 편입되었습니다. 1989년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편입되면서 경남에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가덕도가 위치한 곳이 경남과 부산의 바다로 들어오는 중요 거점에 위치하고 있어 일제가 중요 군사 거점으로 이용한 듯 합니다.

123.jpg
가덕도 외양포 마을에 있는 일본군 포진지의 흔적들. / 김구연 기자

일제가 가덕도 일대를 군사거점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군이 1904년 2월 러일 전쟁을 일으키면서부터입니다.

대한해협과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확보해 러시아 함대와의 해전을 대비한 기지였던 것입니다.

일본군 요새는 주로 외양포를 중심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가덕도에 거주하던 민가 64호 퇴거를 시작으로 1904년 8월에는 기지건설을 위해 임시 축성단을 파견합니다.

1904년 12월 공사를 완료한 일본군은 진해만 요새 포병대대 2중대를 먼저 배치합니다. 곧이어 포병대대 본부를 옮겨와 부대를 증강 배치합니다.

1905년 5월에는 진해만 요새사령부를 옮겨와 대대 규모 이상의 포병부대 주둔지로 확대되면서 이곳은 진해만 요새 사령부의 발상지가 되었습니다.

123.jpg
280mm 유탄포를 배치했던 포좌의 흔적. / 김구연 기자

1908년 8월 사령부는 마산으로 이전하였고, 이 사령부는 1914년 11월 진해 군항으로 이전하면서 외양포 요새는 중포병대대 주둔지로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요새들은 1945년 일본의 패망 때까지 유지되다가 광복 후에 이주민들이 들어와 군 막사 등의 시설을 개조하여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외양포 마을에는 일본군이 만든 막사, 창고, 우물, 배수로 등의 흔적이 있고 특히 외양포 마을 위쪽에는 포 진지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곳 포진지에는 화약고, 관측소, 산악보루, 포 발사대, 일본군이 이용한 막사 등이 있습니다.

특히 엄 폐막사 2개소, 탄약고 3개소, 탄약고와 탄약고 사이에 2개씩 있는 포좌(대포를 올려놓는 장치) 등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 포좌에는 280mm 유탄포를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엄폐 막사는 반원 아치형의 입구와 후면부에는 통로가 있어 연결되어 있는 구조 입니다.

포 진지 입구에는 '사령부발상지지'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 전면에는 비석의 제목과 함께 1905년(명치38년) 4월 21일 부대 편성 명령이 내려지고 같은 해 5월7일에는 편성된 부대가 상륙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936년(소화11년) 6월에 비를 세우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