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맛보기

10월 '열달'.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여기저기 곳곳에서 열리는 잔치 구경 많이 다니셨는지요? 토박이말바라기에서도 작은 잔치를 마련했었는데 잘 마쳤습니다. 새해에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까지 오셔서 더욱 잔치가 빛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제 춥다는 말이 더 쉽게 나오고 더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이달에도 토박이말 맛보기와 함께 더욱 따뜻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씨양이질

뜻: 한창 바쁠 때에 쓸데없는 일로 남을 귀찮게 하는 짓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지 않아 어려운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혼자 일을 하면 씨양이질 하는 사람도 없고 좋겠다 싶지만 아마 엄청 외롭고 힘들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좋음을, 더불어 함께하는 것의 값짐과 고마움을 느끼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옴큼

뜻: 한 손에 옴켜쥘 만큼을 세는 하나치(단위)

저녁에는 국수도 삶고 도토리묵밥도 만들고 해서 좀 걸다 싶을 만큼 차려 먹었습니다. 국수는 한 옴큼을 삶았는데 그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앞서 밥을 몇 숟가락 먹기는 했지만 삶은 국수를 다 먹고 나니 배가 많이 불렀습니다. 요즘 적게 먹으려고 마음을 쓰고 있는데 이틀 내리 저녁을 많이 먹고 말았습니다. 많이 먹은 날은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써야 할 글을 핑계 삼아 셈틀 앞에 앉으니 배가 더 탱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말보다 큰 말은 '움큼'입니다.

옹긋옹긋

뜻: 키가 비슷한 사람이나 크기가 비슷한 일몬(사물)들이 모여 도드라지게 솟아 있거나 볼가져 있는 모양

더위가 가고 건들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어 배곳(학교) 둘레 나무들을 깔끔하게 다듬었습니다. 참일(사실) 나무를 예쁘게 가꾸는 일보다 불이 났을 때 불끔수레(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 길을 마련하는 일 때문에 비롯한 일이긴 합니다.

나무를 옮겨 심은 것도 있고 보기에 좋지 않았던 꽃밭 울타리도 없앴습니다. 가지치기를 하고 웃자란 것은 우듬지를 잘라 주기도 하였습니다. 가지를 치고 옮겨 심은 나무들이 옹긋옹긋 서 있는 것을 보니 새롭고 예뻤습니다.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를 흔들거나 밟지 않도록 하자고 알렸습니다. 앞으로 키도 더 크고 가지들이 자라 더 멋진 모습으로 우리 눈을 맑혀 주면 좋겠습니다.

씻가시다

뜻: 씻어서 더러운 것이 없게 하다.

밝날(일요일)에는 여느 날보다 늦게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습니다. 여느 날 아침에는 밥을 먹지 않는데 밥에다가 묵밥까지 한 그릇 먹었더니 배가 엄청 불렀습니다. 맛있게 먹고 쉬다가 오랜만에 설거지를 했습니다. 네 사람이 한 끼 먹었을 뿐인데 씻가실 그릇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깨끗하게 씻어 놓고 보니 제 기분도 좋았습니다.

다른 날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밝날 낮을 보내고 나면 밤이 얼른 오는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셈틀 앞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바뀌어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써서 널리 알린 보람으로 토박이말 살리기에 힘과 슬기를 보태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라 믿습니다.^^

옹망추니

뜻: 고부라지고 오그라져 볼품이 없는 모양. 또는 그런 몬(물건)=옹춘마니

바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씻고 셈틀 앞에 앉았는데 어제 하다만 일이 생각났습니다. 집 앞에 세워 두었던 발수레(자전거)를 밖으로 내 놓는 일이었습니다. 자물쇠를 채워 놓았는데 열쇠셈(비밀번호)이 생각나지 않아서 못했었거든요.

세워둔 지 여러 달이 되긴 했지만 먼지가 누룽지처럼 앉은 발수레를 보니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바퀴에 바람도 빠지고 보믜(녹)까지 나서 다시 탈 수 있을까 싶었지요. 삐익삐익 소리를 내며 힘들게 굴러가는 바퀴를 보며 제 몸도 얼른 옹망추니가 되지 않도록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생각이 얕고 마음이 좁은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로도 쓰며 비슷한 말로 '옹춘마니'가 있습니다.

씨올

뜻: 피륙이나 돗자리 따위를 짤 때에 가로로 놓는 실이나 노끈의 가닥

일을 마칠 때가 되자마자 바깥일을 보러 나갔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몇 가지 더 생기는 바람에 일거리를 짊어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지저분한 머리를 깎으러 나가려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런데 윗도리에 씨올이 한 가닥 빠져나와 있어 당기니 아주 쭈글쭈글하게 되었습니다. 재빨리 당기면 나온 만큼만 끊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당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옷을 당겨 보았지만 처음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날줄'과 '씨줄'이란 말이 따로 있듯이 '씨올'이란 말에 맞서는 '날올'이라는 말도 아래 보기처럼 있는데 말모이(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은 까닭이 궁금합니다.

씨우적씨우적

뜻: 마음에 못마땅하여 입속으로 자꾸 지껄이다.

그럴 때가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렇게 바뀌어 가는 철 때문인지 아이들도 좀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하는 말이나 움직임 그리고 몸씨(자세)까지 눈에 띄게 달라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눈앞에서 보면 또 좀 느낌이 다릅니다.

어제 본 한 아이도 그랬습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눈앞에서 씨우적씨우적하는 것이 아주 안 좋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를 본 뒤, 생각지도 않았던 일거리가 새로 나온 저녁 무렵부터 제 마음 날씨는 아주 흐리고 추웠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