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감 강매 등 사라지지 않는 언론 갑질
저널리즘 생태계 스스로 파괴하는 행태

며칠 전 한 지방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과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 주제가 '언론 갑질'까지 이어졌다.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의 경험담을 끄집어냈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연감 구매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예산이 부족해 살 수 없다며 거절 의사를 밝히니 "윗분에게 다 말했으니 그냥 처리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담당자가 "도대체 윗분이 누구냐"고 재차 물었더니, 금액도 많지 않은데 까다롭게 군다는 핀잔만 주더란다.

또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 신문사의 연감을 3월인가 4월인가 구매한 적이 있는데, 최근 들어 다른 책을 들이대며 구매해달라고 한 것.

금액도 20만 원에서 1000원이 모자란 19만 9000원으로 덜컥 사주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이 신문사 기자는 이번에 나온 것은 화보며 완전히 다른 책이니 나와 있는 계좌로 돈을 부치면 된다고 사실상 강요를 했다.

물론 양질의 콘텐츠로 좋은 책을 만들었다면 충분히 홍보하고 구매를 부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부류의 책자는 뜯어보지 않고 창고로 직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직원은 "연감이 유용하게 쓰일 데도 있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대부분 19만 9000원짜리 값비싼 컴퓨터 모니터 받침대를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인터넷에 널린 정보를 짜깁기한 수준의 이런 책자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쉽지 않다. 책을 안 사주면 혹시 보복기사를 낼까 봐 두렵다는 게 이들의 걱정이었다.

직원들이 본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얼굴 한두 번 본 게 전부인 기자가 급하게 필요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한 적도 있었고, 이 기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사업의 편의를 요구하는 뻔뻔한 기자도 있었다.

술을 한 잔 마셨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려 어디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최근 들어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행태가 연일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물론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한 비판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보다 앞서 언론이 갑질을 자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고 싶다.

인터넷 매체와 종편의 등장으로 부수와 광고 수입이 떨어지고 신문 자체의 신뢰가 함께 하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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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역신문이 외면받고 저널리즘 생태계가 파괴된 데는 이런 식의 갑질 행태도 일정 부분 이바지한 바가 클 것이다.

최근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4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노부부의 사연이 깊은 울림을 전해줬다.

이 노부부의 기부 기사를 보면서 왜 한국사회에는 제대로 된 언론을 위해 썼으면 한다는 기부천사가 없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언론과 독자들의 신뢰회복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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