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는 이성자 화백의 안식처이자 이상향"
프랑스 파리서 활동한 거장
문인 미셸 뷔토르와 관계 등
생애·작품세계 다각적 조명
진주지역 문화자산화 '과제'

'은하수', '에코페미니스트', '미셸 뷔토르로 보는 이성자' ….

지난 26일 진주 경상대에서 열린 '이성자 화백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한국 최초의 도불 여성화가이자 프랑스에서 '동녘의 여대사'라 불리며 프랑스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성자(1918~2009) 화백의 작품 세계에 다양하게 접근하고 해석하는 시간이었다. 또 앞으로 진주시가 잘 엮어갈 콘텐츠라 최근 학예연구사를 정식으로 채용한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성자:화가의 시간, 하늘도시로 초대하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서 사회를 맡은 안영숙 문화기획전문연구원은 "이 화백이 프랑스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의 예술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진주는 어떠한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 이성자 화백 생전 모습. /연합뉴스

이 화백은 자신의 작품 300여 점을 진주시에 기증하며 말했었다. "문화도시 진주시가 이로 인해 더욱 문화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작품 해석, 연대 구분 넘길 바라"

이성자 화백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위원장 정행길)가 개최한 학술대회는 이성자 화백을 깊이 들여다보는 장이었다.

이성자기념사업회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했던 박신영 큐레이터와 유미리 경상대 외래교수가 '하늘도시로의 초대:이성자 화백의 작품 속에 묘사된 은하수의 세계에서 세계화를 논하다'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고 이어 <이성자의 미술, 음과 양이 흐르는 은하수>의 저자인 심은록 미술평론가와 신달자 시인이 '화가의 시간:민족 전쟁기 여성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메시지'라는 주제로 청중 앞에 섰다. 또 문학평론가와 미술 연구원 등 다양한 토론자가 나서 화백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봤다.

▲ 박신영 큐레이터 /이미지 기자

먼저 화백의 작품에 나타난 은하수의 개념을 더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신영 전시 기획자는 "은하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작업 초기부터 우주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변천 속에서 맥락을 읽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성자기념사업회에서 3년간 화백의 작품을 큐레이팅했다. 그러면서 화백 스스로 구분한 작품 9단계를 은하수로 접근해보려고 시도했다.

이 화백이 1995년 '우주' 연작을 내기 전부터 그녀의 작품 이름에 우주가 있었다. '어느 별의 이야기(1958)', '성좌(1964)' 등 초기 작품에 별이 등장했고, 1965년 한국에서 첫 개인전 때 선보였던 '오작교'는 은하수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작품이다.

박 씨는 "1950~1960년대 유럽에서 우주시대는 뜨거운 화두였다. 하지만 화백은 은하수를 서양의 개념(탐험, 경쟁, 두려움)으로 보기보다 동양적 개념(인간은 우주의 하나)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화백의 대표 조형인 음과 양이 별과 은하수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자신의 안식처이자 이상향으로 바라봤다"고 설명했다.

▲ 유미리 경상대 외래교수 /이미지 기자

화백의 대표 조형 음과 양은 그녀의 아틀리에를 보면 이해가 쉽다. 이 화백은 프랑스 남쪽 투레트 쉬르 루에 아틀리에 '은하수'를 짓고 대문에 은하수라는 글자를 모자이크로 작업했다.

아틀리에 은하수 형상은, 조형 이후 모든 회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화백 스스로 "내 인생의 완성을 시도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은하수는 조형으로 정제하는 과정을 거치며 범세계적인 철학적 개념인 관계와 조화로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 심은록 미술평론가 /이미지 기자

◇"프랑스에서 펼쳤던 철학적 사유 중요해"

이성자 화백과 여러 문학인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그중 아주 긴밀하게 소통한 프랑스가 사랑하는 문인 미셸 뷔토르(1926∼2016). 그는 전통적 소설을 뒤집은 누보로망 작가로 유명하다.

'프랑스 화단과 이성자 화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문을 공개한 유미리 경상대 외래교수는 "이성자 작가는 뷔토르와의 콜라보 작업을 선보이며 잠재되어 있던 문학적 감성을 작품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이 화백이 판화를 하면 뷔토르는 시를 썼다. 1977년 '샘물의 신비'를 시작으로 이 화백이 작고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지속했다.

뷔토르는 말했었다. 이성자를 위해 쓰는 텍스트들은 마치 그녀가 판화를 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고. 그녀가 종이 위에 나무를 놓고 에어브러시로 나무의 그림자를 '반복'해 그리는 것처럼 나도 시의 일부 구절이 마치 도장처럼 변화없이 사용했다고 말이다.

뷔토르를 만나 인터뷰를 한 심은록 미술평론가는 "뷔토르는 2012년 이 화백의 아틀리에를 찾아 마지막 시를 남겼다. 생전에 화백이 뷔토르를 찾아 같이 협업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하필 시인이었을까. 아마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철학을 고양하고 싶었을 것이다"며 "화백의 작품을 대중적으로 해석하고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녀만의 숭고한 예술 철학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도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신달자 시인 /이미지 기자

또 이날 신달자 시인은 이성자 화백을 '대지의 여성'이라고 말하며 "1951년 전쟁의 혼란 속에 세 아들을 남겨두고 프랑스로 떠나야했던 한 여자의 가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그 지독한 몸부림치는 영혼으로부터 예술 정신이 나왔을 것이다"고 발표했다. 시인은 최초의 여성화가로 불리는 나혜석(1896~1948)과 비교하며 어머니, 여성주의 등 다양한 각도로 화백을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 막바지, 이성자 화백이 남긴 업적과 성과가 지역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실정에 대한 토로와 아쉬움이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겸섭 경상대 독문학과 교수는 이성자 미술의 콘텐츠화 가능성을 말했고 안영숙 문화기획전문연구원은 화백의 작품을 진주의 문화자산으로 여기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의 긍정적인 관심을 요구했다. 또 유미리 교수는 프랑스 현지의 연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 기획전 '대지 위에 빛나는 별'은 31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55-749-3664.

▲ 이성자 작 '은하수에 있는 나의 오두막, 2월 N.1, 96'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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