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일하다 다친 '물량팀장'이 최근 재심사를 통해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것은 조선소를 포함하여 산업계 전반에 만연한 다단계 고용의 실태를 알려준다. 피해자는 다단계 재하도급 관계에서 최말단 하청 노동자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하도급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원청과 하청업체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으며 일했다. 그러나 사업자등록증이 있다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비로소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를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음에 따라 향후 비슷한 피해자들도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실질적으로는 원청회사와 고용 관계를 이루는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 피해자들의 사례는 많이 알려져 있다. 불법적 고용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낳는지는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가 산재를 당해도 보상받는 데 어려움을 겪은 데서도 드러났다.

이번 결정을 통해 '물량팀장'이라 불리는 하청노동자도 노동자일 수 있음이 확인됐다. 그 근거로 산재재심위는 사실상 업체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과 매일 아침 업체에 출근 인원을 보고하고 업체가 주관하는 아침 조회에 참석해 업무 수행 과정에서 물량팀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 업체 소장이 상당한 지휘·감독한 사실을 들었다. 또한 노동자 채용에 관해서도 업체에 보고하고 업체 요구에 따라 물량팀 노동자에게 해고를 전달한 점, 물량팀 장비·비품·원자재 등을 업체나 원청업체인 삼성중공업에서 제공한 점 등도 적시했다.

조선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2017년 8만여 명 규모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물량팀' 실태와 규모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계에서는 사내하청 관계를 직접 규율할 수 있는 노동관계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지 않으면 다단계 하청구조의 사슬을 끊기 어려우며 피해자들은 개별 사건마다 소송을 벌여야 한다. 다단계 하도급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특히 조선 업종은 원청회사를 정점으로 도급, 파견, 용역, 사내하청 등 거미줄처럼 간접고용 구조로 얽혀있다. 이런 고용의 난맥상이 조선업의 위기를 가중시켰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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