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천지 만들어 스스로 존재 이유 파괴
판·검사, 부끄러운 전통 추방 실천해야

30년 전 10월,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탈출하여 서울시내로 잠입했다. 탈주범들의 서울 잠입 소식은 즉각 알려져 국민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들은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는데,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 실질적으로 오랜 감방생활을 해야 하는데 불만이 컸다. 여기다 자신들은 겨우 500여만 원 절도범 수준인데 당시 70억 원을 횡령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이 형기가 더 짧다는 데 상대적 불만이 컸다.

이 가운데 최후까지 잡히지 않던 5명 중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대문구 북가좌동 한 가정에 잠입해서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돼 어떤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높았다.

탈옥수 지강헌이 호송교도관의 총을 빼앗아 자살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명언을 남겼다. 사법부의 불신과 그 뿌리에 '전관예우'가 있음을 지강헌은 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잡범에 불과한 그에게 내려진 긴 감옥생활에 비해 짧은 자유를 맛본 대가는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었다. 그의 나이 불과 35세였다.

2018년 10월,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사법부의 불신, 전관예우에 대한 부끄러운 전통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불신은 여전히 높고 경제선진국(OECD) 회원국 가운데 사법부 신뢰도에서 한국은 꼴찌 수준이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최근 공개한 '전관예우 실태조사 및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관예우 현상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일반 국민은 41.9%, 변호사는 75.8%, 검사는 42.9%가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판사는 23.2%만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판사의 54.2%는 "전관예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에서 조사한 데이터조차 국민의 절반, 변호사의 절대다수가 '전관예우'가 존재하다고 답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법조불신의 문제인데 정작 판사들 절반은 애써 '전관예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고 있다. 왜 이런 심각한 인식의 차이가 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법관들이 '전관예우'를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 사법부 불신의 주체로 잘못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도 전관예우가 문제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전관예우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바로 판검사들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면 가장 큰 수혜자가 된다.

전관예우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 아닌 바로 법이다. 그 법으로 살아가는 사법부는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정권이 바뀌고 법무부 장관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전관예우 문화는 전통이 돼 이 나라의 법치사회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전직 대법관들이 수사기관에 줄줄이 불려 다니고 사법처리 대상에 오르내리는 현실이다. 전 대법원장도 사법처리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현실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법부가 얼마나 개혁의 무풍지대에서 폐쇄적인 조직으로 남아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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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를 가능하게 하는 3연(혈연·지연·학연) 사회의 끈끈한 인맥은 몇 년 전 무기수도 호화병실과 쇼핑을 드나들 정도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양심적인 법조인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판검사들이 전관예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것으로 이익을 보는 변호사들, 재력가들, 일반인들이 합세하여 부끄러운 전통을 지속시키려 할 것이다.

전관예우라는 부끄러운 말을 추방할 책임은 판검사에게 있고, 이를 실천할 때 사법부에 대한 정당한 권위와 신뢰는 자연스럽게 수반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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