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재미없고 고루하다는 선입견을 깨트리려는 이가 있다. 선조의 훈화를 적는 대신 자신이 지은 한시를 쓰고 한지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붓을 드는 작가. 바로 권영민 창원문성대(건축학과) 교수다.

그가 '고당 권영민 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창원문성대 융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노년층을 위한 거주환경조성 등을 가르치는 권 교수는 오랫동안 서예를 했다. 어린 시절 상투를 튼 할아버지 밑에서 붓을 들었다는 그는 서예의 전통적인 의미와 감상, 담박한 맛에 빠져 40년 넘게 한지를 펼치고 있다. 또 전공으로 공부한 건축도 균형이 중요한 서예와 연결되어 점, 선, 면이 어우러져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점, 선, 면이 모여 자신만의 서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는 서체의 질서와 리듬 속에서 감성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번 개인전에 공개한 작품 52점도 최근 3년간 쓰고 고민한 서예의 감흥이 고스란히 담겼다.

▲ 권영민 작 '나'.

전시의 주제작은 '나'다. 감빛이 도는 한지에 한글로 적힌 나는 두 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어느 날 면도를 하려고 거울을 보다 나를 보았다. 수십 년간 마주한 나인데, 나는 누구인지 잘 모르겠더라. 실존적 나와 거울 속의 나는 다른 듯 같고 같지만 달랐다. 이를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고래사냥',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 등도 눈에 띈다.

작가는 즐겨 불렀던 가요 '고래사냥'을 썼다. 그리고 '車(차)'를 형상화해 완행열차를 그려넣었다. 가사에서 따온 이미지다.

▲ 권영민 작 '行(행)'.

사람 '人(인)'을 여러 가지 문자 형상으로 표현한 작품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도 메시지가 강하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으며 서로 배우며 깨닫자는 겸손이 담겼다.

또 문양이 돋보이는 한지에 큼지막하게 쓴 '兆(조)'는 아주 전통적인 서체로 가로(또는 세로)로 배열해야 한다는 서예의 고정관념을 깬다.

작가는 "서예는 붓을 다루지 못하면 쓰지 못한다. 서체마다 리듬이 다른데, 이는 붓을 제대로 들어야만 표현할 수 있다. 앞으로 서예가 2차원의 평면적 작품을 넘어 내용으로, 이미지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3차원의 예술이 되길 바란다. 그러는 마음으로 날이 좋을 때마다 붓을 들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작가는 이번 전시와 함께 문집 <시과십 고당잡기>를 펴냈다. 전시 주제작인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썼던 일기를 묶은 책이다. 그는 돌이켜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봐야 했기에 잡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전시는 11월 2일까지. 휴무 없음. 문의 010-7169-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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