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을 향해서만 오르려는 사람들
낮은 곳 바라보면 더 큰 것 볼 수 있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우리들의 삶 또한 올라갔으면 내려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올라가려고만 하지 내려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올라가는 것이 기쁨이고, 내려가는 것이 슬픔이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이것은 삶의 근본을 뒤엎는 것이고, 병으로 치면 매우 심각한 상태인데 이것을 문제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척 조심스럽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가 고은의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미 그 꽃에 대한 특별한 사연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꽃이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어째서 내려올 때는 보였을까요? 그것은 아마 올라갈 때는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내려갈 때는 마음이 홀가분해지니까 그제야 제 눈이 열려 그 꽃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 "생명을 얻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 길로 가는 사람이 많다"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좁은 문과 넓은 문은 어떤 문입니까? 저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이라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려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올라가는 사람은 많아도 내려가는 사람은 적고,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해도 내려갈 때는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안고 있는 정치, 경제, 통일 등 여러 가지 현안들이 있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문제인가 할지 몰라도 제대로 보지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세상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하나님의 자리로까지 올라가려고 하다가 낙원을 잃었습니다. 그의 후예들도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탑을 쌓았다가 말이 뒤섞여 서로가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도 여전히 올라가려고만 한다면 어떤 것도 제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무조건 올라가려고만 하지만 올라가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내려가기만 하면 보지 못했던 비참함이 보이고, 듣지 못했던 아우성도 들릴 뿐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모든 것을 뜨겁게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려가는 것이 구원이고, 내려가는 자를 오늘의 예수로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공명탁.jpg

이 좋은 계절에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올라가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다가 진실로 보아야 할 것들을 보고, 들어야 할 것들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