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져 있는 바다는 색다른 희열을 준다. ‘방어진’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다다른 주차장은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 유원지다. 그러나 어묵과 닭꼬지·번데기·핫도그가 즐비한 길을 지나 펼쳐진 소나무숲과 바다는 ‘피곤해진 눈꺼풀로 서로를 잠그고 앉아 있는 납빛 얼굴들’을 환하게 각색한다.

‘나는 눈을 감는다./나는 없다./아니다. 나만 있다./천지간에 나만이 있다./아슬한 하늘 끝 파도소리 바람소리 되어 나만이 있다.’(유치환의 ‘바닷가에 서서’ 중에서)

왼쪽으로 늦겨울 바람을 안고 예술적인 자태로 선 해송의 행렬은 야산 꼭대기에서 만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송림을 벗어날 즈음 다가서는 거대한 바위와 짙푸른 바다가 등장한다. 그들은 가슴속을 후벼파서 내장들을 한바퀴 돌려 씻어준 다음 제자리로 갖다놓고, 심장으로 관통하는 혈류의 찌꺼기들을 사뜻하게 걸러준다.

울기등대가 있는 울산 울기공원은 우리나라 동남단에서 동해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지점이다. 울기등대는 동해의 길잡이역할을 하며 ‘해원(海原)’ 앞에 자리한 대왕암은 역사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시대 30대 문무왕은 평상시 지의법사에게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 한다”고 했다. 대왕이 즉위 21년만에 승하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냈더니 마침내 용으로 변해 동해를 지키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해중릉은 대왕바위라 하여 경주군 양북면에 있다.

울기공원에 있는 대왕암은 문무대왕비의 넋이 담긴 곳이다.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나 용이 되었는데 하늘을 날다가 이 곳 울산의 큰 바위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용이 잠겼다는 이 바위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대왕암은 바닷가에 놓인 일반 바위와 색깔이 좀 다르다. 누런 황토빛에다 파도에 시달리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 막 생긴 바위마냥 천연하게 앉아있다.

대왕암에 올라서면 지구상에서 제일 큰 진짜 고래뼈가 보인다. 고래뼈 하나가 성인 키보다 훨씬 크니 본래 고래의 모습은 얼마나 클지 대충 짐작이 간다.

대왕암을 휘감아 도는 순간 눈에 띄는 게 남근바위다. 왜 이런 곳에 남근바위가 있어야 할까 싶어 마을 사람들이 남근바위를 쓰러뜨리려다 변을 당할 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무대왕비를 지키는 ‘보디가드’일까.

아직 동장군이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나보다. 동해 바람은 남해바람보다 차갑다. 대왕암 끝에 선 남자가 “이렇게 바람불고 추울 땐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면서 바람을 포용하는 게 낭만”이라며 애인을 꽉 껴안지도 못한채 엉성한 위로를 하는 동안 15명도 채 서있지 못하는 대왕암 끝 공간이 시끌벅적해진다.

지난 97년 현대중공업이 놓아주었다는 대왕교를 지나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낚시꾼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낚싯대를 드리우는지 잠깐 궁금해진다. 고양이로 만든 앙증맞은 대리석 의자에 궁둥이를 붙여 보기도 하고 대왕암 군데군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고래뼈 앞에서 아이들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부모들. 집 가까이에 이런 공원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오른쪽으로 난 소나무 숲길을 따라 발을 옮기면 울기등대와 더 가까워지고 100여년전부터 자라고 있다는, 뿌리가 훤히 드러나보이는 소나무들 곁에 다가갈 수 있다. 바닷바람과 비에 못이겨 자꾸만 뿌리가 드러나고 있는 듯해 걱정스러워진다. 계속 방치해두면 뿌리가 완전히 뽑혀 나무가 줄줄이 쓰러질 것만 같은.

북쪽 등성이를 넘어 계단길을 내려가면 일산해수욕장이다. 밀물때라 파도가 거세진다. 파도가 바다쪽으로 갈때 모래 위에 글자를 써놓으면 들어오는 파도가 금세 지워버린다.

일산해수욕장 오른쪽으로 바위가 보이는데 굴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굴’이라고 부른다. 용굴은 뱃사람을 괴롭히던 못된 청룡이 동해 대왕의 노여움을 사서 갇혀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해수욕장 앞바다에 있던 바위섬인 여기암은 신라시대 왕들이 궁녀를 거느리고 뱃놀이를 즐긴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유리병처럼 말끔히 속을 비워낸/한 영혼이 허락된다면/나는 이제 눈부신 비상으로/날아오르고 싶네/어디로든 갈 수 없었던/갇혀 있던 막막함 벗어 두고’(최춘희의 ‘상승과 추락사이’중에서). 600m의 송림을 따라 돌아나오는 사람들 얼굴이 돌길 옆으로 활짝 핀 동백처럼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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