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재심위, 근로복지공단 판정 뒤집고 '노동자' 판단
"외견상 도급 사업주 같지만 업체 지시 따라 업무 수행"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사고로 다친 '물량팀장'이 사고 1년 6개월 만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물량팀장으로 일했던 ㄱ(55) 씨가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업체와 하도급 계약한 사업주이기에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재심사를 한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는 판정을 뒤집었다. 산재재심위는 ㄱ 씨가 하도급 업체(사업주)에 노동을 제공한 노동자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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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중공업 /연합뉴스

◇물량팀장도 노동자 = 산재재심위는 지난 24일 재결서를 통해 ㄱ 씨의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ㄱ 씨는 지난해 5월 1일 삼성중 거제조선소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면서 타워크레인 붐대가 간이 휴게소를 덮친 사고 당시 현장에서 팔과 다리를 다쳤다. ㄱ 씨는 그해 7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하지만, 공단은 3개월 후 요양 불승인 처분을 했고, 올해 4월 심사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ㄱ 씨는 5월에 재심사를 청구해 마침내 노동자성 인정과 함께 산재 승인을 받았다.

애초 근로복지공단은 ㄱ 씨가 사업자 등록을 해 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고, 물량팀 소속 노동자를 채용하고 임금을 지급했기에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주여서 요양 불승인 처분을 했었다.

그러나 산재재심위는 "물량팀장인 ㄱ 씨가 외견상 업체로부터 도장 물량을 도급받은 사업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임금을 목적으로 업체에 전속돼 직접 도장작업을 하고 물량팀 소속 노동자를 관리하는 등의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재결 이유를 설명했다.

산재재심위는 △사실상 업체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매일 아침 업체에 출근 인원을 보고하고, 업체가 주관하는 아침 조회 참석, 업무 수행 과정에서 ㄱ 씨와 물량팀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 업체 소장이 상당한 지휘·감독한 사실 △노동자 채용을 업체에 보고하고, 업체 요구로 물량팀 노동자에게 해고를 전달한 점 △물량팀 장비·비품·원자재 등을 업체나 원청업체인 삼성중공업에서 제공한 점 등을 들었다.

◇고통스러운 1년 6개월 = 삼성중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 지원을 하는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남지부는 ㄱ 씨가 사고 이후 1년 6개월 동안 고통받았다고 했다.

물량팀장이라는 이유로 초기 치료과정에서부터 '본인이 알아서 치료하라'는 말만 들었고, 불편한 몸을 치료받지 못하고 산재 신청이 기각되면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ㄱ 씨는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로 수개월간 병원 치료를 했고, 사고 이후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ㄱ 씨는 "사고 직후 12일 입원하고, 병원비 150만 원이 나왔다. 그런데 산재인정이 안 된다고 해서 바로 퇴원했다. 그 이후에는 보름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꼴로 작은 동네 병원에 다녔다. 매일 병원을 못 가서 주로 집에서 찜질하고 지냈다. 이번에 재결서를 받고, 일하다 다쳤는데 그동안 고통받아서 힘든 게 먼저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은주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는 "고용노동부 산재재심위가 지난 8월 9일에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재결을 했다. 그런데 재결통지가 당사자에게 오는 데 다시 두 달이 넘게 걸렸다.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온 ㄱ 씨의 고통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재심사청구를 대리한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믿음)는 "이번 재결은 사용자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일하는 물량팀장에 대해 근로자성을 부인해 온 근로복지공단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과 관련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단에 다단계 하청업체의 근로자들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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